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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23

탈룰라 49년생 양봉숙. 희대의 악플러. 사람들을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요즈음의 시대에 악플은 그리 보기 힘든 것이 아니다.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올라오는 인터넷의 특성상, 그리고 댓글로 소통하는 문화의 특성상. 어떤 사람들은 익명의 힘을 빌어 실제로 입밖에 내기 힘들 끔찍한 말들을 키보드를 통해 토해내고는 한다. 그런데 양봉숙. 그녀는 달랐다. 우선, 그녀가 토해내는 악플들은 누가 봐도 정도를 넘어선 것들 뿐이었다. 그리고, 결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악플을 받은 이들은, 스캔들에 휘말린 정치인일때도, 이제 막 데뷔한 연예인일때도, 혹은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린 희생자일때도 있었다. 그녀가 댓글을 단 곳의 본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사람이 많이 관심을 가진 글이라면 무조건적으로.. 2023. 6. 24.
투표 “하아,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한다” 혀를 쯧쯧 차며 손에 든 명부를 이리 저리 돌리는 이 검은 옷, 검은 갓의 남자의 직업은 저승차사. 올해로 저승차사 829년차에 접어들은 해원맥은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이란 다름 아닌, 명부에 적힌 망자들의 사망 시각과 실제로 망자가 죽은 시간이 차이가 났기 때문, 보통 이런 경우는 명계에 보관된 필사본, 일종의 백업본과 같은 느낌의 서류를 뒤져서 시간을 대조해보기 마련인데, 이번에 문제는 명계에 보관이 되어 있어야 할 일종의 필사본이 소실이 되어버려 원맥의 골치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지금 차사의 눈앞에 선 망자는 셋. 차이가 나는 시간은 대략 30분. 원맥은 과연 이 셋 중 누구의 시간이 실제와 다른지 도무지 알아낼 길이 없는 상태였다. 만약에 이 30분이 망.. 2023. 6. 23.
파충류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교도소를 향하는 버스 안에서, 포승줄에 묶인 채로, 나는 생각한다. 놈을 처음 본건 3년, 아니 약 2년 반정도 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식 때, 내 앞에 섰었던 그 놈. 교복 카라 위로 보이는 놈의 목에 일어난 버짐.. 아니 발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이 기묘한 피부병은, 마치 도마뱀 같은, 파충류의 비늘을 닮아 있었다. … 나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일진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이 운영하시는 남들이 이름을 들으면 그럭저럭 알아볼만한, 성공한 사업체를 가지고 계셨고, 그로 인해 내 생활은 늘 풍요로웠다. 태어나서부터 언제나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컸던 덩치 덕에, 그리고 능력 있는 부모님에게서 받은 풍족한 용돈 덕분에, 나는 늘, 학교에서 힘있는 무리들의 중.. 2023. 6. 22.
가난한 마술사의 노래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은 꽤나 먼 과거의, 가난했던 한 소년의 집에서 시작이 되지. 소년의 집은 가난했지. 소년의 기억이 시작되었던 때부터 소년은 아빠가 없었지. 소년의 엄마는 일을 하지 않았고 소년은 늘 배고팠지. 소년의 위로는 누나가 하나 있었지. 삐쩍 마른 뼈만 남은 누나는 언제나 소년을 먼저 걱정해주는 착한 누나. 먹을 것이 있어도 늘 양보하고, 입을 것이 없어도 늘 양보하고, 그런 소년의 누나가 처음으로 월경을 한 날 아침, 엄마는 누나를 데리고 시내로 나갔지. 그리고 저녁 늦게 누나의 손을 잡고 나갔던 엄마의 손은 누나대신 먹을 것을 쥐고 돌아왔지. 소년은 누나는 어디에 있는지 물었지만, 엄마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지. 그래, 그렇게 너무나도 당연한 듯, 제일 처음 팔려간 건 소녀의 누나였지. 누.. 2023. 6. 21.
아는 아이를 성인사이트에서 봤어 음, 안녕, 이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우선 자기소개부터 할게. 나는 지금 40대 중반, 서울에서 중견기업을 다니고 있는 회사원이야. 아내도 있고, 슬하에 딸도 둘이 있어. 그리고 큰딸보다 나이가 많은 시츄도 한 마리 있고. 뭐 필요 이상으로 개인정보를 여기에 올릴 필요는 없겠지. 아무튼 그런 아저씨의 이야기라고 알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래. 후우, 그래, 근데 정말 이걸 어떻게 시작을 하지. 일단, 이 이야기는 거의 2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야.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지방에서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다가 몇 번인가 물을 먹은 뒤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또 스펙이라도 쌓아야겠다 싶어서 결심했던 게 일본 워킹홀리데이였어. 영어는 워낙에 울렁증이.. 2023. 6. 20.
봉고차 납치같은 건 세상에 없어 안녕 여러분? 글을 쓰는 것이 오랜만이라 조금 서툴더라도 이해를 해주길 바래. 제목은 읽었지? 봉고차 납치 같은 건 세상에 없어. 오늘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봉고차 납치. 다들 도시전설 같은 느낌으로라도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해, 왜 그 버스 안에서 어떤 할머니가 자리도 많은데 괜히 젊은 처자 앉아있는데 시비 걸어서 다음 정류장에 내리라고 소란 부린 다음에, 그 처자가 정말로 화가 나서 내려서 해결 보려고 했더니 버스기사 아저씨가 할머니만 내려주고 처자는 문을 닫아서 못 내리게 했다는 그 이야기. 그리고는 한다는 이야기가 ‘뒤에서 봉고차가 한대 따라왔어’ 였던가? 또 비슷한 이야기로, 어디 길 가다가 봉고차 안에서 좋은 물건 파는데, 와서 구경만 하고 해서 가보면 갑자기 거즈에 뭘 묻혀서 입에 가져다 .. 2023.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