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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파충류

by 담쟁이저택 2023. 6. 22.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교도소를 향하는 버스 안에서, 포승줄에 묶인 채로, 나는 생각한다.

놈을 처음 본건 3년, 아니 약 2년 반정도 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식 때, 내 앞에 섰었던 그 놈.

교복 카라 위로 보이는 놈의 목에 일어난 버짐.. 아니 발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이 기묘한 피부병은, 마치 도마뱀 같은, 파충류의 비늘을 닮아 있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일진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이 운영하시는 남들이 이름을 들으면 그럭저럭 알아볼만한, 성공한 사업체를 가지고 계셨고, 그로 인해 내 생활은 늘 풍요로웠다.

태어나서부터 언제나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컸던 덩치 덕에, 그리고 능력 있는 부모님에게서 받은 풍족한 용돈 덕분에, 나는 늘, 
학교에서 힘있는 무리들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가난한 놈들, 약한 놈들은 나에게 있어서 경멸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그건 고등학교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중학교 때 친했던 무리와 같은 학교에 진학하지 않았음에도, 너무나도 자연스레, 끼리끼리랄까, 
예전과 비슷한, 나같이 강하고, 능력 있는 무리를 찾아 친해졌고, 또 다시 그 무리의 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힘있는 나에게 있어서, 
어렸을 때 부모에게 버림받아, 근처 보육원에서 자라, 거기에서 통학을 하는, 그 기묘하게 생긴 놈은 그저,

재미있는 장난감일 뿐이었다. 

놈은 기괴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아토피도 아니고, 무어라 한번 제대로 듣기는 했지만, 기억할 수 없는 길다란 무슨 라틴어 같은 그런 이름의 병명. 딱히 치료약도 없고, 대책도 없는 일종의 불치병.

그 병은 놈의 피부를 갈라진 뱀의 피부마냥, 마치 쩍쩍 갈라진 모랫바닥마냥, 갈라지게 만들었고, 
그 갈라진 모습은 더할 나위 없는 파충류의 비늘모양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좌우로 찍 찢어진 눈하며, 필요이상으로 길다란 혓바닥. 

그래서 내가 붙여준 놈의 별명은 도마뱀. 그 별명은, 대 히트작으로, 전교생이 놈을 도마뱀이라 부르는 데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더랬지.

그렇게, 끔찍한 놈의 외모와 더불어, 
놈의 몸은 무슨 연유인지, 너무나도 치유력이 좋았다.

나와 같은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면 다들 한번쯤은 해보았으리라 믿는, 그 놀이.
손가락을 최대한 넓게 벌린 채, 책상 위에 놓고, 그 손가락 사이를 연필이나 볼펜으로 왔다 갔다 찍어대는, 어찌 보면 조금은 무서운 놀이.

놈과 그 놀이를 한번 한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내 무리가 놈의 팔과 손을 붙잡았고, 내가 손에 볼펜대신 조각 칼을 들었지만.

나는 그냥 놈이 겁에 질린 모습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그냥 심심했고, 놈이 거기에 있어서?
그게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놈의 손가락 사이를 조각 칼로 빠르게 찍어대며 왕복했고, 이 놀이를 해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실수를 했다.

날카로운 조각 칼에 베여, 새끼 손가락에서 피를 철철 흘려댔던 놈.
비명을 지르는 놈의 입을 틀어 막고, 나는 놈을 데리고 양호실로 따라갔다.

물론, 놈이 걱정돼서 그랬던 건 아니다.
단지 놈이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못하게 감시하려고 했을 뿐.

그리고 양호실에 도착한 놈의 새끼손가락은..
어느새 나아있었다.

새끼손가락에 말라붙은 피가 어색해 보일 만큼, 깨끗하게 붙어버린 놈의 살.
나는 그때 처음으로 놈이 소름이 끼쳤다.

물론 소름이 끼쳤던 건 단지 그때 뿐.
그때 이후로는 오히려, 망가지지 않는 장난감이 생겼다는 신기함 때문인지, 나는 무리와 더욱 더 집요하게, 더욱 더 잔인하게 놈을 괴롭혔다.

어차피 아무리 때려봐야, 바로 나으니까.
아무리 칼로 그어봐야, 바로 나으니까.
아무리 팔을 꺾어 부러뜨려봐야 다음날이면 멀쩡히 붙어있었으니까.

그 신비한 몸뚱아리는, 나와 내 무리 사이에서는 악어샌드백이라고 불렸다.



놈은 참 운이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와 같은 반이 되었으니까.

만약 다른 반이 되었다면, 지금의 내 운명도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놈과 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즈음, 나는 놈에게 내 방 청소를 시키기 시작했다.

계기는 아마도, 퇴근하고 돌아오신 어머니에게 방이 더럽다고 혼이 난 이후, 방 정리는 하기 싫고, 혼도 나기 싫어,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레, 
하교 길에 놈을 끌고 와 내 방 청소를 시켰다.

 



근데 놈은 생각보다 너무 정리를 잘 했다.
놈이 정리를 해놓고 간 방을 본 어머니께서는 꽤나 기뻐하셨으니까.

그래, 그리고, 그 쓸모 없는 재능을, 내가 그 사실을 내 무리들에게 알 린지 얼마 되지 않아
놈은 하교 길에 우리 무리들 전부의 집을 돌며 청소를 하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언제나 바쁜 우리가 늘 할 것 없는 놈과 같이 있을 수는 없으니, 놈에게 집 열쇠를 건네주거나, 아니면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알려주고는 정리정돈을 마치고 귀가할 것을 명령했다.

놈에게 집안으로 들어오는 안전장치를 넘겨주면서도 불안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늘 잘나가는 강한 놈이었고, 그 놈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밟아버릴 수 있는, 내 장난감이었으니까.

밖에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 잠시 집에 들여놓는다는 느낌 정도였을 뿐.
나에게도, 내 무리에게도 아무런 불안감은 없었다.


그래.

내 여자친구의 생일날이 조금 지날 때 까지는.

무리의 친구들 중에서는 내 여자친구가 생일이 제일 늦었다.

만 18세의 생일.
이제 법적으로는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며, 축하를 해 주었던 날.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던, 나의 생일날, 나는 아버지에게 받은 용돈으로, 무리의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미리 뚫어놓은 술집에 가서 가볍게 맥주도 한잔 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온 집에는,

경찰이 와 있었다.

익명의 신고를 받고 왔다는 그 경찰은, 내 방, 내 침대 밑에서 찾은 나는 알지도 못하는 상자 안에서,

누군가의 잘린 오른손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믿을 수 없었다.
잘린 손이라니? 무슨 장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하는 나에게, 현장에 있던 경찰은 이미 증거품 봉지에 담긴 잘린 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진짜라는걸.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놈이라는 걸.
도마뱀의 손마냥, 비늘같이 일어선 피부가 덕지덕지 붙은, 놈의 손.

그런 피부를 가진 놈이 이 세상에 둘이나 있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날, 나와 어울렸던 친구들의 집에서는 모두 다같이, 한 조각씩 놈의 몸이 발견됐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 모두는,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리고 구속된 채, 며칠간 이어졌던 수사.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이것이 놈의 함정이라고 주장했다.
나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놈이, 지금 쇼를 하는 거라고.

익명의 전화도, 분명히 놈이 건 것 일거라고.
그러나, 수사를 맡은 형사의 반응은, 차가웠다.

각자의 집에서 발견 된 조각들은, 잘 짜맞추면, 머리와 몸통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나올 듯 했다.
그리고 당연한 듯, 놈은 내 여자친구의 생일날 며칠 전,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그래, 마치 실종이라도 된 듯이.

경찰이 이미 주위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놈을 괴롭혔는지에 대한 증언도 다 확보한 상태에서.

나와, 내 친구들은 졸지에 토막살인범이 되어버렸다.



그래, 그게 벌써 몇 개월 전의 이야기.
나는 지금 검찰청에서 검사앞에서 진술서를 작성하고 교도소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술서에는..
..나의 자백이 들어가 있다.

경찰에게 발견되기 며칠 전, 나는 집에 돌아왔을 때, 자살을 한 놈을 발견했고, 너무 놀라, 친구들을 불러, 그 자리에서 어찌할까를 같이 고민한 뒤, 결론적으로 놈의 시신을 나눠가져 서로 각자 알아서 처분하기로 했다.

..라는 거짓자백.

물론, 시신을 어찌 처리했는지, 그 과정에서 머리와 몸통은 어찌되었는지, 멋대로 막 지어낸 말도 안 되는 거짓자백,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가 구해주신 변호사는 내가 만 18세가 넘어버림으로써, 더 이상 소년범으로 취급 받지 못한다 하였다. 바꿔 말하면 최고형으로 사형도 가능하다는 말.

일단 지금 상태에서는 죄를 자백하고 검사의 구형을 낮추는 것이 최선이라는 게 변호사의 조언이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내가 어쩌다가.

아무리 조언을 따른다 한들, 아무리 감형을 받는다 한들.
내 인생은 이제 끝이다.

도대체, 내가 무슨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고.
다들 성장하면서 이 정도 실수쯤은 하지 않나?
그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이런 짓을..

끼이익-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호송차는 교도소 입구에 다다랐다.
이런 내 기분을 아는지,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착잡하다.

도대체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려는 걸까.
복잡한 머리를 가지고, 인계형사를 따라 호송차에서 내려 교도소 입구로 향한다.

이대로 교도소 내부까지 호송차가 들어가면 좋으련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늘 외부에서 돌아올 때면, 이렇게 입구에서 내려서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끔 한다.

이럴 때마다, 주위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마치,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듯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그게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된 기분이 들어서.

안 그래도 비가 와서 기분이 안 좋은데, 옷까지 젖..



잔뜩 인상을 쓰고 서류에 싸인을 하고 있는 인계형사를 뒤로하고, 대충 주위로 눈을 흘기던 도중.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교도소 정문을 둘러싼 인원들 중, 유난히 내 눈에 잘 뜨인 그 놈.
우비를 깊게 뒤집어 썼지만, 나는 알아 볼 수 있는 그 놈.

도마뱀새끼?

저 새끼가 도대체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아니 잠깐, 저 새끼가 살아있으면,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입에서 쌍 욕을 내뱉으며 놈에게 달려든다, 아니 달려들려 해본다.

그렇지만 여럿이 동시에 묶여있던 포승줄은, 내 발목을 잡았고, 난 바닥을 구르며 더러운 진흙을 얼굴에 뒤집어 썼다.

내 돌발 행동에, 교도관과 인계형사가 나에게 달려든다.
아니요, 아저씨들, 잡아야 할 사람이 잘못됐다고!

저 새끼!
저 새끼가 범인이라고! 아니, 범인이 아니라, 그 피해자라고! 아저씨, 형사 아저씨! 아 이것 좀 놓으라고!

미칠 듯이 발버둥치며 날뛰는 나를 놈이 바라본다.

이 멀리서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더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침대 밑에 숨겼던, 하지만 지금은 멀쩡히 붙어있는 오른손을 나에게 흔들며..

낼름 거리는 놈의 혀는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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