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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가난한 마술사의 노래

by 담쟁이저택 2023. 6. 21.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은 꽤나 먼 과거의, 가난했던 한 소년의 집에서 시작이 되지.


소년의 집은 가난했지.
소년의 기억이 시작되었던 때부터 소년은 아빠가 없었지.


소년의 엄마는 일을 하지 않았고 소년은 늘 배고팠지.


소년의 위로는 누나가 하나 있었지.
삐쩍 마른 뼈만 남은 누나는 언제나 소년을 먼저 걱정해주는 착한 누나.


먹을 것이 있어도 늘 양보하고, 
입을 것이 없어도 늘 양보하고,


그런 소년의 누나가 처음으로 월경을 한 날 아침, 


엄마는 누나를 데리고 시내로 나갔지. 
그리고 저녁 늦게 누나의 손을 잡고 나갔던 엄마의 손은 누나대신 먹을 것을 쥐고 돌아왔지.


소년은 누나는 어디에 있는지 물었지만,
엄마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지.


그래, 그렇게 너무나도 당연한 듯,
제일 처음 팔려간 건 소녀의 누나였지.


누구나 어려운 시절이었고, 누구나 가난한 시대였지.
길거리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 따위 지천에 널려있는 지옥 같은 시절.
사람이 사람을 사고 파는 잔인한 시절.


소년이 나이를 조금 더 먹었을 무렵.
소년의 엄마는 소년의 손을 잡고 시내로 나갔지.


소년은 알았지,
오늘이 엄마를 보는 마지막 날이라고.


그렇게 빵 몇 조각과 싸구려 와인 몇 병과 맞바꿔
소년이 팔린 곳은 유랑 서커스 단이었지.


이름도 없고, 규모도 작은 서커스단.
아무리 매질이 심하고 일이 힘들었어도 소년은 웃어야만 했지.


소년에게 맡겨진 역할은 삐에로.
소년의 인생은 사실 거기에서부터 변했던 거야.


삐에로는 매일같이 화장을 해야 했고,
소년은 손재주가 아주 좋았지.


그렇게 삐에로로 살기를 몇 년.
소년의 화장솜씨는 사람의 얼굴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


소년의 서커스단이 처음으로 이름을 날렸던,
세 쌍둥이 미녀가 타는 공중그네 곡예의 세 사람이 사실은 전혀 남남이었다는 걸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그 세 사람은 사실 아무리 좋은 말로도 미녀라고 불러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걸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 소년은 청년이 되었지.


청년은 여전히 손재주가 좋았고 머리는 더 좋았지.
스무 살이 되던 날, 청년은 서커스단을 떠나 청년은 거리의 마술사가 되었지.


기발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장치들로,
다른 마술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마술들을 사람들에게 선보였지.


카드마술, 공중부양, 탈출마술.
지금까지 사람들이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 많은 마술들을, 청년은 척척 해냈지.


그렇게 청년은 유명해지고,
조금은 부자가 되었지.


그러나, 세상은 쉽지 않은 거야.
청년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거리에는 마술사가 늘어났지.


그 중에서 한 명.
청년이 개발해낸 마술들을 너무나도 쉽게 흉내 내는 도련님이 하나 있었지.


어마어마한 부잣집 도련님.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귀족 자제분께서 심심풀이로 뛰어든 거리의 마술에 사람들은 현혹되어갔지.


분명히 청년이 개발해낸 마술인데 사람들은 청년을 가짜라고 불렀으니까.


도련님은 아름다운 미녀 조수를 한 명 데리고 있었지.
똑같은 공중부양도, 똑같은 탈출마술도, 사람들은 미녀 조수의 도움을 받는 도련님의 것을 더 좋아했지.


그러던 중, 정말로 큰일이 난 거야.
도련님이 새로운 마술을 개발했거든.


지금까지는 청년의 마술을 베끼기만 했던 도련님이 어떻게 그 마술을 개발했는지는 몰라.
하지만 도련님의 새로운 마술, 


그것은 무려 절단마술.


세워놓은 커다란 관 짝에 걸어 들어간 미녀 조수를 머리와 다리만 보이게 잘라놓은 뚜껑을 닫은 뒤, 무자비하게 가운데를 커다란 칼로 베어 잘라버리는 그런 마술.


그렇게 몸이 반으로 잘리고, 관이 비스듬히 미끄러져 떨어져 가는데도,
피한방울 나지 않고 생글생글 웃는 미녀 조수와 상체와 떨어져서도 까딱거리는 그녀의 발가락.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무 상처 없이 성한 몸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그 마술은,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지.


청년은 절박해졌어
한낮 부자집 도련님의 취미생활에 청년은 생계가 곤란해져 가고 있었으니까.


청년은 도련님의 마술을 베끼려 했지.
처음에 도련님이 청년의 것을 베꼈듯이.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머리가 좋았던 청년도 도련님 마술의 비밀은 알아낼 수 없었지.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아무리 연구를 해봐도 답은 알 수 없었지.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 도련님은 점점 더 유명 해져갔고,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청년의 이름을 잊어갔지.


그런데,
사람들이 정말로 청년을 다 잊어버리려고 할 무렵에 청년이 돌아왔지.


도련님의 미녀 조수보다 훨씬 더 예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조수를 데리고.
그런 청년이 사람들에게 처음 선보인 마술은 도련님과 같은 절단 마술이었지.


조수를 관 짝에 밀어 넣고, 커다란 칼로 두 동강을 내버리는 마술.
하지만 청년의 마술은 도련님의 그것과는 달랐지.


생글생글 웃었던 도련님의 조수와는 다르게 청년의 조수는 끔찍한 비명을 질렀으니까.
그리고 두 동강을 내는 것이 아닌, 질릴 정도로 관짝을 토막을 내갔으니까.


피한방울 나오지 않았던 도련님의 마술과는 다르게, 청년의 마술은 늘 피바다였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더 좋아했지,


생동감이 없었던 도련님의 마술보다 정말로 살 조각이 튀어나가는 현장감과 그 비릿한 피냄새가 사람들을 더 흥분시켰거든.


그리고, 당연한 듯이 늘 그 마술의 끝에는 몸에 상처하나 없는 아름다운 조수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면서 나타났으니.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마술이었지.


새로운 마술덕분에 청년은 다시 유명해졌고 더욱 더 부자가 되어갔지.
그리고 언제부턴가 도련님은 마술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더 이상은 공연을 하지 않았기에 청년이 다시 위기감을 느낄 일은 없었지.


그렇게 청년은 계속해서 마술을 해나갔고,
더욱 더 부자가 되어간 그런 이야기.


부자가 되었어도 청년의 손재주는 여전히 훌륭했고.
청년의 조수의 미모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았지.


그도 그럴게, 청년의 화장솜씨는 사람의 얼굴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누구나 어려운 시절이었고 누구나 가난한 시대였지.
길거리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 따위 지천에 널려있는 지옥 같은 시절.
사람이 사람을 사고 파는 잔인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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