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 단편집

탈룰라

by 담쟁이저택 2023. 6. 24.


49년생 양봉숙.


희대의 악플러.
사람들을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요즈음의 시대에 악플은 그리 보기 힘든 것이 아니다.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올라오는 인터넷의 특성상, 그리고 댓글로 소통하는 문화의 특성상.
어떤 사람들은 익명의 힘을 빌어 실제로 입밖에 내기 힘들 끔찍한 말들을 키보드를 통해 토해내고는 한다.


그런데 양봉숙.
그녀는 달랐다.


우선, 그녀가 토해내는 악플들은 누가 봐도 정도를 넘어선 것들 뿐이었다.
그리고, 결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악플을 받은 이들은, 스캔들에 휘말린 정치인일때도, 이제 막 데뷔한 연예인일때도, 혹은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린 희생자일때도 있었다.


그녀가 댓글을 단 곳의 본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사람이 많이 관심을 가진 글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손가락으로 토악질을 했다.


“얘쁘다고잘난척하는저런개집년은잡아다가아랫도리를-“
“사람하나타죽은게뭐그리대다난이리라고저지랄을하는거지같은새끼들은삼대를태워죽-“
“개호로잡것아너낳고애미가쳐먹은미역국-“


시사, 스포츠, 연예, 게임.


정말로 마치 읽을 수 있는 모든 글에 악플을 달겠다는 듯, 하루 종일 달리는 그 끔찍한 댓글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이 나빠지기에 하기에 너무나도 충분했다.


그리고 그녀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그녀는 자신이 다는 모든 댓글에 자신의 이름을 아이디로 사용했고, 늘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힘과 동시에 악플을 시작했다.


댓글의 시작은 늘 한결같았다.


“나서울사는49년생소띠양봉숙인데“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틀린, 끔찍한 내용의 댓글들.
그리고 그 댓글의 작성자 49년생 양봉숙.


그녀가 단 댓글을 본 모두는 그녀를 욕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더욱더 독한 악플로 응수했다.


정말로 말이 통하지 않는 무대포 악플러.


그렇게 한동안 인터넷에서 유명인사였던 그녀는 얼마 전 그녀가 악플을 달았던 우울증을 앓고 있던 남자 연예인이 자살을 하면서 경찰의 수사망에 올랐다.


물론 그녀가 단 댓글이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유명한 악플러였던 그녀가 경찰의 조사를 받는 다는 소식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과연 정말로 그녀는 49년생 양봉숙이 맞는가.
그리고 그것이 맞다면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끔찍한 글로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려 했는가.


그렇게 여러 가지 의문점이 떠오르는 가운데, 경찰은 지금 이 희대의 악플러를 조사실에 앉혀놓고 취조를 시작했다.




##




강력계 김현식 반장은 식후땡을 마치고 찝찌름한 표정으로 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즈음은 도무지 어찌된 일인가 기억이 조금 애매한 기분이 든다.


분명히 뭔가 증거품 관련해서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통 기억이 나지를 않고.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이상한 상황.


영 어색한 기억들을 뒤지며 자기 책상을 찾아가는 김반장의 눈에 취조실 안의 풍경이 들어왔다.


“어? 뭐야, 저 새끼야? 봉숙이?”


악플러 양봉숙을 잡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김반장은 지금 취조실 안에 앉아있는 젊은 남성을 보며 실소를 지었다.


“49년생이라더니 개뿔 89년생이라고 해도 되겠구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어내는 김반장에게 동료형사가 다가왔다.


“아, 반장님 오셨어요. 저 놈이 양봉숙이에요”


“알아, 딱 봐도 모자라게 생긴 게, 무슨 정신장애라도 있는 거 같은데, 저거 이거 아니야 이거?”


손가락으로 머리 옆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는 김현식반장에게 동료형사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에, 제대로 보셨네요. 근데 그게 틀린 말은 아닌데요, 이게 참.. 생각보다 좀 껄끄럽더라고요 알고보니까”


“껄끄럽기는?”


“저 친구, 지금까지 자기 홀어머니 이름을 썼더라구요. 양봉숙. 실제로 서울 사시는 1949년생 소띠구요”


악플러가 어머니 이름을 썼다는 이야기에 김현식 반장의 표정이 굳었다.


“뭐? 아니 뭐 저런 호로새끼가 다 있어. 지금 자기 낳고 길러준 어머니 이름으로 그 짓거리를? 사람들이 욕을 얼마나 해댔는데 그걸-”


“아니 그게요, 그러니까..”


울화통이 밀려올라온 김현식 반장의 말을 막으며 동료형사가 급하게 말했다.


“저 친구 보시다시피 정신이 좀 아프잖아요?”


“그치, 근데 그게 그 패륜짓거리를 할 이유가 되냐는-“


“저 친구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더라고요. 실제로. 지금은 더 악화되서 정말로 오늘 내일 하시는 모양인데..”


“뭐? 아니 그럼 저 새끼는 지금 심지어 아픈 자기 어머니 이름을 팔아다가-”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는 김반장의 말을 동료형사가 재빠르게 다시 받았다.


“정말로 믿었대요.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을”


“뭐?”


뚝.
지금까지 온몸으로 분노감을 표시하고 있던 김현식 반장의 동작이 굳었다.


“홀어머니랑 정말로 세상에 단 둘 뿐인데, 정작 본인은 제대로 경제활동을 해서 어머니를 간병할 수 있는 능력도 안되니까..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쓴 약이라도 삼킨 표정으로 말하는 동료 형사의 말에 김현식 반장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취조실 안.
필사적으로 양 손을 비비며 죄송하다고, 너무나 죄송하다고 오열하며 사죄하는 정신이 아픈 한 청년을 보면서.


김현식 반장은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창작 단편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램프의 지니  (0) 2023.06.27
재수없는날  (3) 2023.06.27
투표  (0) 2023.06.23
파충류  (1) 2023.06.22
가난한 마술사의 노래  (0) 2023.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