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 단편집

투표

by 담쟁이저택 2023. 6. 23.


“하아,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한다”

혀를 쯧쯧 차며 손에 든 명부를 이리 저리 돌리는 이 검은 옷, 검은 갓의 남자의 직업은 저승차사.

올해로 저승차사 829년차에 접어들은 해원맥은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이란 다름 아닌, 명부에 적힌 망자들의 사망 시각과 실제로 망자가 죽은 시간이 차이가 났기 때문, 보통 이런 경우는 명계에 보관된 필사본, 일종의 백업본과 같은 느낌의 서류를 뒤져서 시간을 대조해보기 마련인데, 이번에 문제는 명계에 보관이 되어 있어야 할 일종의 필사본이 소실이 되어버려 원맥의 골치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지금 차사의 눈앞에 선 망자는 셋. 차이가 나는 시간은 대략 30분. 원맥은 과연 이 셋 중 누구의 시간이 실제와 다른지 도무지 알아낼 길이 없는 상태였다.

만약에 이 30분이 망자에게 더 주어졌던 시간이었다면 차사인 그가 시말서 한 장 쓰면 끝날 간단한 일이지만, 지금 이 30분은 더 주어진 것이 아닌 모자란 시간, 다시 말하자면 이 망자 중 누군가는 자신이 죽었어야 할 시간보다 30분 먼저 끌려 와 버린 것이 된다.

이런 경우, 차후에 만약 해당 망자가 윤회시에 이걸 걸고 넘어지면 명계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만큼 보상을 해 줘야 하는 일이 생기고 그건 다른 망자들에게 있어서 불공평한 일이 되어버린다.

아니 그도 그럴 것이, 다들 잘생기고, 예쁘고, 부자인 집에서 사람으로 윤회하고 싶어하지, 어디 사막 한가운데에 전갈에 기생해서 사는 기생충으로 윤회하고 싶어하지는 않으니까.

고작 30분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겠느냐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건 정말 모를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시간은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데도, 혹은 죽이는데도 사용될 수 있는 그런 주관적인 중요도를 가진 시간이니 해당 시간을 잃어버린 망자가 주장하기에 따라서는 다른 망자를 제치고 인간으로의 윤회를 선점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시간이었다, 물론 염라대왕의 재량이 크게 작용하겠지만.

그리하여, 오늘 망자의 인도를 맡게 된 해원맥은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방법이라곤, 이 망자들 중 하나를 다시 30분간 부활시켜 그 빈 시간을 메우는 수밖에 없다.

“아니 도대체, 위에서는 명부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한식경이 차이가 나?”

다시금 손에 쥔 명부와 눈 앞에 멀뚱 멀뚱히 선 세 망자를 비교해 보던 해원맥은 갓끈을 풀고 머리를 북북 긁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해원맥은 일단 질러보기로 한다.

“아 젠장 모르겠다, 이봐요, 앞의 세 분, 대충 지금 상황 봐서 알겠죠? 딱 봤을 때, 내가 한 반시간쯤 먼저 죽은 거 같다 하시는 분 손?”

해원맥의 제안에, 원맥 앞의 망자 셋은 서로 눈치만 볼뿐 말이 없다.

“아, 이거 진짜 곤란하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내가 지금 딱 다시 30분 살아나야 한다, 아,물론 살아나도, 30분 뒤면 꼼짝 없이 다시 죽어서 여기 와야 되요, 그래도, 아무튼 내가 다시 꼭 살아나야 한다 하시는 분 손?”

움찔.
별 반응이 없었던 첫 번째 제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확실하게 반응이 있다.

약간씩은 움찔거리며, 첫 번째 망자가 슬며시 손을 든다.

“에, 그, 저승사자 양반, 내가 그 잃어버린 30분의 주인인지는 잘 모르겠소만, 만약에 살수 있다면 그 30분 꼭 다시 살아나보고 싶소”

원맥의 시선이 첫 번째 망자에 고정되자, 첫 번째 망자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이름은 박순헌이라고 하오. 아 뭐 명부가 있으니, 이미 알고 있겠구먼, 아무튼 내 나이가 올해로 89살이니 사실 살만큼 살았지. 딱히 더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은 없소. 그렇지만 만약 살아날 수 있다면 내 마지막 30분, 꼭 다시 살아나보고 싶소”

“무슨 이유라도 있어요?”

원맥의 질문에 망자가 대답한다.

“나는 생전에 정말 열심히 살았소. 돈도 제법 모았지, 근데 내가 돈을 버느라 바빠서 자식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모양이오. 지금도 내 주검 곁에서 내 걱정을 해주는 놈, 안타까워하는 놈은 자식 네놈 중에 단 한 놈도 없구려. 다 그 놈의 돈 돈 돈 소리 뿐, 만약 그 30분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면 정식으로 유언장을 작성하는데 쓰리다. 내 전속 변호사도 있으니, 구두로 작성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유언장 내용도 별거 없소, 그냥 내 전 재산,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한마디 딱 남길 참이니”

첫 망자가 이야기를 마무리 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자, 두 번째 망자도 살며시 손을 든다.

“저기, 저승사자님? 차사님?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 저도 사실 좀 살아나고 싶어요”

원맥의 시선이 두 번째 망자에게 돌아간다.

“제 이름은 유한나라고 해요. 나이는 24살, 뭐 아까 옆에 어르신이 말씀하셨듯이, 자기소개는 필요 없겠지만, 저도 사실, 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저는 애초에 태어나서부터 불치병이었거든요. 부모님도 사실 돌아 가신지 너무 오래되셔서, 사실 지금도 만약 부모님 저승에 계신다면 이승보다 저승으로 더 먼저 가고 싶어요. 그렇지만 마지막 30분, 그거 만약에 된다면 저도 좀 살아나보고 싶어요”

“흠, 저승에 먼저 가고 싶다는 처자가, 무슨 이유라도 있어요?”

원맥의 질문에 두 번째 망자가 대답한다.

“제가 살던 원룸, 주인 아주머니가 되게 좋은 분이셨어요. 저 몸 아픈 거 알고 많이 챙겨주시기도 하셨고, 근데 제가 지금 방안에서 죽어버려서, 너무 늦게 발견되면 좀, 그 뭐랄까요. 보기 안 좋은 상태일거 같고, 원룸 값 떨어질 거 같고, 그래서요. 30분 주시면,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밖에서 죽으려구요. 뭐 주인 아주머니께 감사의 편지 같은 거 하나 쓸 수 있는 시간도 있으면 좋겠네요”

두 번째 망자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세 번째 망자도 손을 든다.

“저, 저, 저도 살아야 해요, 아니 살고 싶어요, 선생님”

살짝 말을 더듬으며, 세 번째 망자가 말한다.

“기,김선일이라고 하,합니다. 저, 저는 예, 옛날부터 말을 좀 마, 많이 더듬었어요. 그, 그래서, 학교에서도 왕, 왕따 같은 거 당하고, 자, 자퇴하고, 막, 그래서, 제대로 효, 효도 같은 것도 못하고”

세 번째 망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흐음?”

원맥의 시선이 세 번째 망자에 고정된다.

“어, 엄마가 저 혼자서 키, 키우셨어요. 저 히, 히키코모리라, 방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줄, 아, 아직 모르세요. 엄, 엄마 거실에 계신데, 마지막으로 사, 사랑한다고, 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세 번째 망자.

해원맥은 고민을 시작한다.
다들 무언가, 사연이 있다.
물론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느냐만, 이 30분의 추가생명은, 아무래도 그가 멋대로 정할 물건은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고민을 하던 해원맥은, 묘안을 떠올린다.

한번 풀었던 갓 끈을 다시금 졸라 매며 원맥이 말한다.

“뭐 다들 사연이 하나씩 있는 모양이니, 우리 이렇게 합시다. 투표를 하죠. 각자 한 사람당 한 표씩. 자기 이외의 사람에게 투표하고, 투표에서 뽑힌 사람은 깔끔하게 30분 더 살고 돌아오고, 뒤에 저승 가서, 이걸로 잃어버린 30분 문제 삼기 없기로, 어떻습니까?”

“투표라고 하셨소?”
“투표요?”
“투, 투, 투표?”

세 망자는 잠시 혼란해 하는 듯 했지만, 이내 그것이 가장 공평한 방법임을 깨달았다.

원맥은 세 망자를 삼각형을 그리도록 자리시킨 뒤, 눈을 감도록 했다.
그리고 자기가 생각했을 때 다시 살아나야 할 것 같은 망자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도록.

“자 그럼 숫자를 세도록 하지요. 하나 둘 셋! 눈을 뜨세요!”

원맥의 숫자세기가 끝나자 세 망자가 눈을 뜬다.
그리고 투표에서 뽑힌 망자는..

세 번째 망자.
김선일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던 망자들은 모를 일이겠지만, 눈을 감고, 원맥이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마자, 순헌과 한나는 망설임 없이 선일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순헌과 한나 사이에서 손가락이 갈팡질팡 했던 선일과는 다르게 이미 첫 번째, 두 번째 망자는 투표 전부터 마음을 굳힌 뒤였다.

“제, 제가 뽑힌건가요? 저, 정말로? 저, 자, 잠시 살아나는거에요?”

선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슥슥 밀어 닦는다.

“어린 친구가, 어머니 생각 하는 마음이 참 예쁘고, 또 안타깝기도 하네, 자네가 살아나는 게 아무래도 맞지 않나 싶어, 내 자식놈들은, 뭐 지들이 알아서 살겠지, 좀 얄밉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게 다 내 업인것을”

순헌은 자상한 표정으로 선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저도 비슷한 기분이네요, 생각해보니 내일이 원룸 아주머니가 김치 가져다 주시기로 한 날이어서요. 아마 혹시라도 제 시신이 너무 늦게 발견돼서 막 지저분해지지는 않을 거 같아요. 방값 떨어지는 건 좀 죄송하긴 하지만, 그래도 뭐, 다음 생에 뵙게 되면 잘해드리면 되죠”

무언가 선일의 기분에 공감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한나가 살포시 선일을 포옹하며 말한다.

“잘 갔다 와요, 어머니께 못다한 이야기 마저 다 하고, 있다가 봐요”

한나의 인사에, 선일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선일을 보며 원맥은 손가락을 퉁긴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선일군은, 지금부터 딱 30분 있으니, 명심하고, 또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 잘 쓰도록 해요”

원맥의 손가락에서 딱 소리가 나자, 선일의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그리고, 서서히 다시 밝아진다.

그렇게 밝아진 그의 시야에 비추어진 장소는 그의 요새. 아니 그의 방.
중학교 졸업 이후, 방구석 폐인으로 살아온 그의 방은 이미 사람의 거주지라기보다는 짐승의 우리 같았다.

그렇게, 돌아온 선일의 귀에 거실에서 들려오는 티비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선일의 어머니는 집에 계시는 듯 하다.

저승에서부터 흘려온 눈물을 더러운 소매로 훔쳐 닦고, 선일은 죽은 순간까지도 잡고 있었던, 오른손에 쥐여진 컴퓨터 마우스에 힘을 실은 뒤.





C:\Users\Kim\Desktop\검정고시자료\인강\제2외국어\일본어인강\따오기 폴더를 삭제했다.

“아 맞다, 외, 외장하드들도 포, 포멧해야지”

선일은 부랴부랴 살찐 손으로 책상 서랍을 밀어 수개의 소형 하드디스크를 꺼내든다.

제한 시간 30분.
그는 시간이 부족했다.

'창작 단편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수없는날  (3) 2023.06.27
탈룰라  (4) 2023.06.24
파충류  (1) 2023.06.22
가난한 마술사의 노래  (0) 2023.06.21
아는 아이를 성인사이트에서 봤어  (0) 202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