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크러쉬라고 알아요? 뭐 살짝 그런 느낌?”


걸크러쉬, 딱히 익숙한 단어는 아니지만 들어본 적은 있다.

여성이 여성을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 때 쓰는 말이라던가.


모란의 칭찬 아닌 칭찬에 선아는 조금 멋쩍은 표정이 되었다.


그런 선아의 표정이 재미있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모란은 다시금 커피 한 모금을 쪼로록 빨아 들인 뒤 말을 이어갔다.


“근데 검사님, 궁금한 게 있는데 만약에 그 여학생 두 명중에 한 명이 맞다고 쳐도 나중에 시장 안에서 그 애는 어떻게 찾아내려는 거에요? 지난번처럼 막 그냥 돌아다니다가 만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잖아?”


모란의 질문.


선아는 그녀의 질문이 꽤나 날카롭다고 느꼈다.

아니 정확히는 모란이 그 말을 하는 순간 가슴 한 켠이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선아는 이실직고를 하기로 결심한다.


“정곡을 찔렸네요. 사실 그게 제가 제일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믿는 구석이라면 하나 있지만, 사실 그게 정답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어서 저도 걱정이네요”


“믿는 구석이요?”


의아해하는 모란에게 선아는 설명을 이어나간다.


“제 시계 가져간 카메라 좌판 주인 도깨비요. 승희씨 말에 따르면 도깨비들은 거짓말은 못한다는데 그 도깨비, 분명히 저한테 김서방을 봤다고 했거든요. 승희씨랑 따로 떨어져서 돌아보기 시작한 다음에 본 도깨비라 그 김서방이 승희씨 일리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바위산씨는 그 도깨비가 장물아비는 아니라고 했고. 또 지난번에 정식으로 도깨비 시장에 들어간 사람은 저랑 승희씨밖에 없다고도 했으니,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 도깨비라면 혹시 뭐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네요”


어떻게 보면 실낱 같은 희망이지만, 지금 선아가 가진 것이라고는 그것에 전부였다.


“문제는 그 카메라 좌판까지 다시 갈수 있느냐는 건데, 그건 바위산씨한테 맡겨놓은 카메라 다시 돌려받아서 다른 도깨비들한테 물어보면서 가보려고 해요, 도깨비들은 도깨비들 물건의 주인 알아볼 수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선아의 설명이 그럴 듯 하게 들리는지 모란은 말없이 빨대를 문채 고개를 끄덕끄덕거린다.

어떻게 보면 진실로 이어진 한줄기 거미줄 같은 느낌의 끈이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아쉬울 때이니까.


다시 한번 쪼로록-

어느새 눈에 띄게 줄어가는 모란의 커피를 보며 이번에는 선아가 묻는다.


“그런데 모란씨는 지금 저한테 이 이야기 듣고 나서, 바위산 씨한테는 어떻게 전달하는 거에요? 무슨 별도의 연락수단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요?”


선아의 질문에 모란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음- 그게 있기는 있어요.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승희가 있는 거지만”


“승희씨가요? 아니 그럼 왜 바위산씨는 전화를 승희씨한테 안 돌려놓고-”


굳이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나온 모란에게 실례가 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선아는 굳이 한 다리를 더 건너야 한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런 선아의 반응을 이해하는지, 모란은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게, 참 뭐랄까 말로 설명하면 웃기게 들릴 거 같은데, 아마 승희가 워낙 전화를 잘 안 받아서 그런 것보다는, 아니 뭐 물론 그것도 좀 맞는 말이겠지만, 그것보다는 번역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일거에요”


“번역이요?”


지금까지 우리가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가?

선아는 애초에 1588 유선번호가 연락처였던 것부터 무언가 정상적인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모란의 대답은 정말로 의외였다.


“그게, 도깨비님들은 사람보다 신에 가까운 분들이라, 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대화면 몰라도, 글로 적거나 하려면 중간에 그, 뭐랄까 통역사랄까, 번역기랄까 하는 게 하나 필요하거든요. 그,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곤란하고, 아니 곤란하다기보다는 다 말했다가는 나 승희한테 엄청 혼날 거 같고, 아무튼 지금 여기서 말하는 번역기는 나고. 그리고 승희는 뭐랄까 내가 번역해놓은 글로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바위산님한테 날리는 뭐 그런 느낌이랄까? 미안해요, 말이 좀 이상하네?”


많이 이상하다.

아니, 선아는 도무지 지금 모란이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번역.

종이비행기.


무언가 암호같이 들리는 단어들.


고개를 갸우뚱 하는 선아에게 곤란한 표정으로 모란이 말을 이어나간다.


“미안요, 지금은 대충 그런 걸로 넘어가줘요. 이게 좀 사연이 있는 이야기라..”


무언가를 회피한다는 느낌을 안은 채, 모란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삼켰다.


그리고 선아는 그런 모란의 표정에서, 가슴 한 켠을 눌러오는 저릿한 느낌을 받았다.

이미 선아에게는 익숙한 그 직감에서 그녀는 모란이 지금 무언가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은 애써 넘어가기로 했다.


이 자리가 선아가 모란을 취조하는 자리도 아닌데다가,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무언가 어색한 분위기를 남긴 채, 선아와 모란은 그 자리를 마무리 하고, 헤어졌다.



##



사락- 사락-


선아를 제외한 모두가 퇴근해 버린 한적한 그녀의 사무실.

선아는 이미 어두워 져버린 창을 등지고, 책상 위에서 서류철을 넘기고 있었다.


정식으로 꾸려진 문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단시간에 만들어 낸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일종의 보고서. 박형식 사무관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총 50여장의 보고서에는 낮에 바위산에게, 아니 모란에게 전해준 두 명의 실종자들의 정보가 들어가 있었다.


실종자 하나.

고등학교 2학년 홍은목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혜화여고 2학년 3반.

아버지는 내과 의사, 어머니는 전업주부. 학교 성적은 중상위권, 교우관계에 특별한 문제 없음.


약 일주일 전 방과후 늘 같이 하교하던 친구와 헤어진 후 실종.

은목이 사는 아파트 CCTV를 확인해본 결과 집으로 귀가한 사실도 없음.


하교시간이 한참을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딸이 걱정된 은목의 어머니가 그녀의 핸드폰에 수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있다는 메시지를 확인, 최초 실종 신고시간은 밤 11시 32분.


은목이 평소에 귀가하는 시간이 4-5시 사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신고시간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 외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음.


현재 학교 근처 CCTV영상 분석 중.


실종자 둘.

중학교 3학년 유예은


집안 자체가 3대째 이어져 오는 지역 유지, 예은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체를 여러 개 운영 중. 그 중 대부분은 선박 부품, 정비에 관련된 사업들로 남포항에 주선한 대부분의 선박들은 크고 작게 이 사업체들과 연관이 있음.


최근에는 사업의 확장으로 집안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으로 보임.

성적은 학교 최상위권. 모범생. 교우관계에 문제 없음.


예은의 정확한 실종 시간은 불명.


실종 일자는 은목과 같은 약 일주일 전.

사건 당일, 예은의 부모는 새벽부터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밖에서 업무를 보았던 것으로 확인.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예은이 없다는 것을 발견.

즉시 경찰에 신고. 최초 신고 시간은 새벽 2시 11분.


유복한 집안의 그녀의 몸값을 노린 유괴의 가능성도 있으나, 범인으로부터 현재까지 그 어떠한 연락도 없음.


따라서 현재까지는 실종상태.


두 여학생의 생활기록부에서 시작해서 교복을 입은 두 사람의 사진으로 끝나는 보고서.

이미 수 차례도 넘게 읽어본 보고서를 다시금 훑어보며, 선아는 차분히 그 두 학교의 교복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 새겨 넣고 있었다.


...


과연 지금 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내가 본 그 여학생이 맞을까.

아니, 만약에 맞더라도, 혹은 틀리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차이가 있을까.


선아의 머릿속이 복잡해져 간다.


바위산이 말했다, 지금 선아가 하고 있는 일은 그녀가 도깨비 시장에서 본 그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바꿔 말하면, 지금 그녀가 그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만.

정녕 이것만으로 된 것인가, 무언가 더 준비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걸까.


한참을 이어져간 선아의 고민.


모두가 퇴근 한 뒤에도 그렇게 두어 시간을 더 사무실에 머물렀던 선아는 이윽고 책상을 밝게 비추던 스텐드의 전원을 끈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선아는 지금 당장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했다.

그리고 실종된 학생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그녀가 담당하고 있는 다른 사건들 역시 선아의 관심이 필요한 상태였다.


도깨비 장터에 장이 다시 서기까지 대략 남은 시간은 이제 이틀.

시장으로 다시 들어가는 그때까지, 선아는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건들에 집중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무실을 나서며, 자신의 텅 빈 사무실 문을 당겨 닫는 선아의 귀에 들려오는 나무의 마찰음이 조금은 스산하게 들려왔던 건 그녀의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



그리고 이윽고 시간이 흘러 다시금 도깨비 장이 서는 날.

선아는 자신이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직면 하고 있었다.


...


최선을 다해서 후회가 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기합을 넣어 남은 이틀을 불태우듯 보낸 선아가 다시금 도깨비 터에 방문하였을 때, 열린 현관문 너머에서 그녀를 맞아 준 것은 모란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모란 뿐이었다.


바위산은 부재중이었고 승희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한 도깨비 터.


잔뜩 기대한 마음을 가지고 휑한 응접실에 앉아있기가 거북해 도깨비 장터로 가는 장지문 앞으로 자리를 옮긴 선아에게 모란은 민망한지 배시시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뭐랄까, 원래 주요 인물은 늦게 등장하는 거라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승희랑 도깨비님인가봐?”


물론 그냥 웃자고 한 소리겠지만, 

너무 해맑게 웃으며 하는 모란의 말에 선아는 조금은 기가 찼다.


특히나 지난번 방문 이후 아직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아니 정확하게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옥죄어 오는 그 느낌에 치여왔던 선아는 지금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좋게 말하면 긴장이 풀렸다고 해도 좋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기분.


지난번 장에 다녀온 이후로 단 한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던 승희와, 자신에게 부탁을 해놓고도 잠적하다시피 한 바위산에 대한 불만이 좀 새어 나오려 할 무렵.


끼이이익-


“꺄아악?”


갑자기 들려온 소름 끼치는 소리에 질러버린 선아의 비명소리를 잡아먹으며, 마치 미친듯 질주하던 덤프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는 듯한 소리를 안고,

선아와 모란이 자리한 응접실 한 가운데에 바위산이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는 튕겨져 들어왔다.


빙글 빙글 돌면서.


“하아- 하아- 좋은 저녁입니다. 아니 좋은 밤인가요. 오늘 밤 달은-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군요. 이선생님, 강선생님, 죄송합니다. 늦어버렸습니다”


헐레벌떡 이라는 표현을 너무나도 과격하게 동적으로 보여준 바위산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아마 확실히 서둘러서 온 것이 티가 나는 상황.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무언가 엄청 바빴던 것이 느껴지는 그 행색에 선아는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그렇게 선아가 잠시 가졌던 불만사항을 뒤로 접어 두고, 바위산에게 인사라도 하려 할 때, 바위산은 척 하고 자신의 복 주머니에서 금속제의 무언가를 꺼내어 선아에게 내밀었다.



“제가 너무 바쁘다 보니 이제서야 막 집어오는 길입니다. 정답이었습니다. 이선생님. 역시 대단하시군요. 유예은 학생 집안에서 도깨비 거울이 나왔습니다”


도깨비 거울?

선아는 인사를 위해 반쯤 올렸던 손을 돌려 바위산이 내민 물건을 받아 들었다.


은은한 조명에 살짝 반짝이는 금형.

그 정체는 거울이었다.


“한번 비춰 보시죠. 유출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생각보다 상태가 좋습니다”


바위산의 설명에 선아는 거울을 돌려 자신을 얼굴을 비추어 본다.


마치 국사책에나 나올듯한 고대유물 풍의 거울.


한쪽 면이 반질반질하게 닦인 청동, 아니 사실 정확한 재질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금속제의 거울을 받아 든 선아는 그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에서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현대식 거울에 익숙해진 탓일까.


상이 제대로 비추어 지는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그 거울을 보는 사이 약간이나마 도깨비들에게 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탓에 선아는 애써 고개를 휘둘러 그 기운을 떨쳐버려야 했다.


그렇게, 거울에 대한 짧은 탐색을 마치고 바위산에게 거울을 돌려주려 고개를 돌린 선아는 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선아는, 지금 눈 앞에, 그녀에게 손을 뻗어 손에 쥔 거울을 넘겨주기를 요구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기 자신과 똑같이 변한 누군가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위치상, 그리고 정황상 아마도 바위산일 것이 확실한 그 인물은 지금 머리부터 발 끝까지, 선아가 입은 옷뿐만 아니라 옷에 선 그 주름까지 완벽하게 복사를 해놓은 상태였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도플갱어 같은 그 모습에 선아가 넋을 놓은 사이, 선아의 모습을 한 바위산은 선아의 손에서 부드럽게 거울을 받아 들었다.


그제서야 얼음땡 놀이에서 땡을 받은 듯 움직이는 선아를 보며, 선아의 얼굴로 짓궂게 웃음을 지은 바위산은 손에 거울을 쥔 채 짧게 박수를 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


“뭐, 대충 이런 물건입니다. 이선생님. 거울의 주인을 거울에 마지막에 비춘 사람의 모습으로 바꿔버리는 물건이라, 이미 보셔서 알겠지만 딱히 인간세상에 있어서 좋은 물건은 아니지요, 그리고 덕분에 아마도 지난번 시장에서 본 아이가 유예은 학생일 확률이 높아졌네요”


유예은.

고성여자중학교 3학년.


선아의 머리 속에 지난 며칠간 넣어놓은 예은의 정보가 스쳐 지나간다.

선아가 잠시 머리 속을 스캔 하는 사이, 쌍둥이 쇼를 흥미롭게 관람한 모란이 바위산에게 말한다.


“도깨비님, 승희는 아까 나한테 자기 오늘 조금 늦게 올 거 같다고, 준비할게 많다고 먼저 출발하라고 하던데 도깨비님은 어떻게 하실 거?”


“아, 그렇네요. 그러고 보니 아마 오늘 한선생님 제대로 무장하고 오실 테니 오래 걸리긴 하시겠군요. 저는 지금 안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아마 바로 들어가야 할거 같은데. 이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바위산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선아의 의향을 묻는다.

선아는 지금 산이 말한 무장이라는 단어가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로 했다.


이번 방문에 지난번 본 여학생을 찾아내려면 지금도 시간이 부족하다.


“저도 바로 들어가는 걸로 해주세요”


선아는 말을 마치고, 모란의 도움을 받아 지난번 썼던 이매탈을 얼굴에 뒤집어 쓴다.

여전히 탈이라는 물건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한번 써봤다고 지난번 보다는 훨씬 낫다.


선아가 탈을 착용하는 것을 확인 한 바위산은 옷 소매를 들어 아직 땀이 조금 덜 마른 자신의 이마를 콕콕 찍어 닦으며 말을 한다.


“네, 좋습니다. 그럼 일단 돌려 드릴 물건부터 드리고. 바로 출발 하는 것으로 하지요”


돌려줄 물건?


선아가 탈 뒤에서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짓는 사이. 

바위산은 선아에게 어느새 챙겨온 선아가 지난번 그녀의 시계와 맞바꾼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건넨다. 


“강선생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본래대로라면 이 영감탱.. 아니 양반하고는 오늘 제가 직접 찾아가서 담판을 짓고 오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조금 힘이 들것 같네요. 두억시니 위치가 어느 정도 확인이 되었거든요. 저는 그쪽으로 가봐야 할 듯 싶습니다. 그래서 참 송구스럽지만 부디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두억시니.

무언가 묵직한 울림을 가지는 그 이름에 선아는 잠시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오늘 그녀의 우선 순위는 단 하나.

지난번의 여학생이니까.


가벼운 설명과 함께 선아에게 카메라를 넘긴 바위산은 양손에 깍지를 끼고 파르르 손목을 털어 손가락을 풀기 시작했다. 마치 격투기류 운동이라도 하러 가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를 보며 모란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겨서 선아에게 내밀었다.


“검사님, 이거 승희가 지난번에 맡겨놓은 물건”


"네?"


선아가 의아한 목소리를 내며 돌아본 모란의 손 위에 자리한 것은 다름아닌 지난번 승희가 선아에게 건넸던 파란 나비장식이 달린 머리 핀과, 견과류.

선아는 그제서야 자신이 부럼을 챙겨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의외로 세심하네요, 승희씨. 이런걸 미리 다 준비해주고”


“뭐, 그 기지배한테는 철두철미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런 걸로 쳐요”


선아는 키득거리는 모란에게서 건네 받은 부럼을 주머니에 넣고, 머리에 나비 핀을 꽂으며 승희가 이것들을 모란에게 맡겨 놓았다는 건 어쩌면 승희는 자신이 오늘 늦게 올 거라는걸 미리 알기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을 시작했다가 곧 그만 두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니까.


선아는 어느새 자신의 심장 박동이 매우 빨라 졌음을 깨달았다.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일까.


이 도깨비 장터가 얼마나 넓은지, 선아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때 본 그 학생이 지금 생각하는 유예은이 맞는지, 혹은 다른 사람인지, 아니 애초에 사람이 맞기는 맞는지에 대한 확증 따위 없다.


그리고 설령 맞는다고 한들 오늘 그녀가 다시 그때 그 여학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 역시 없다. 아니 조금 더 잔혹하게 말하자면, 그 여학생이 지금까지 살아있을 거라는 보장자체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그녀의 가슴의 나침반은 분명히 저 장지문 건너를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들어가는 것.


천천히 가슴을 끌어올려 심호흡을 한 후, 마음을 굳힌 뒤 선아는 바위산에게 준비가 다 되었음을 고했다.


그런 선아의 반응을 확인한 바위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란에게 청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는 것으로 하지요. 강선생님. 문을 열어주세요”


청을 들은 모란이 힘껏 밀어 제친 장지문.

분명히 아무것도 없어야 할, 거실 한가운데 선 장지문 뒤편의 텅 빈 공간너머로 어두워진 거리와 그 거리를 밝히는 새빨간 호롱불들이 비친다.


이제 두 번째로 방문하는 도깨비 시장.


지난번과 같은, 그렇지만 또 다른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돌담 길을 향해서 선아는 장지문의 문지방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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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_ㅇ 2017.06.27 13:33 신고

    늘 잘보고있어요! 다음편도 기다립니당 +_+

  2. 러그러그 2017.06.29 15:59 신고

    앗! 한달이 넘게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ㅠㅠ

  3. 돗가비친구 2017.06.30 15:39 신고

    이번편도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 돗가비친구 2017.08.21 16:54 신고

      쓴이님 다음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닿ㅎㅎ 흑흑..

    • 죄송합니다ㅠ 갓난아기가 생겨서 애기 보는게 너무 바쁘네요. 여유가 생기는대로 다시 재개하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돗가비친구 2017.08.23 09:56 신고

      아! 아가가 생기셨다니!
      그럼 당연히 아이가 먼저죠 ㅎㅎ 여유있을대 써주세요~~

  4. 크뤽케 2017.08.27 04:05 신고

    다음편이 보고싶다!!!ㅠ.ㅠ 흐구흐규휴
    아빠가되신거축하드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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