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아는 자신의 팔을 쥐어짜는 상대에게 그 정체를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손목에 달리는 고통 뿐. 

상대는 그저 살기서린 눈빛을 보낼 뿐 묵묵부답이었다.


물론 선아가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 물어야만 했다.


만약, 지금 내 팔을 쥐고 있는 이가 도깨비라면 적어도 이 질문에 거짓말로 답변은 못할 테니까.


그리고 그런 근거에서 미루어 보건데, 지금 이렇게 다른 말로 답변을 회피하지도, 무언가 답을 하지도 않는 인물은 적어도 도깨비는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이 인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확실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인물이, 결코 예은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결코, 지금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


이 예은을 흉내 낸 인물의 정체에 대해서 머리 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선아는 지금 자신이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정말로 다른 대안이 없었을 뿐.

그녀 가슴의 촉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결코 이 인물을 바위산의 문으로 안내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기에, 그래서 선아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 느낌에 따랐을 뿐. 


딱히 차후에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 이후부터는 어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선아 스스로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황.


그런 선아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스쳐 지나간 것이 승희가 건네준 머리핀이었다.


이 일반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무언가 구원을 보내줄 만한 인물로 승희나 바위산 이상의 이가 없을 테니.


그리고 마치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고 증명하듯 눈앞의 이 예은을 흉내 낸 인물은 두 번씩이나 선아를 제지했다.

그 말은 아마도 이 인물은 머리핀의 사용 용도를 알고 있다는 것일 테고, 아마도 그 사용후의 결과를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일 터.


그렇기에 선아는 더더욱 어떻게든 이 머리핀을 사용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한 순간, 단 한 순간만 이 잡힌 손목을 풀 수 있다면..


이제는 정체를 알 수 없게 된 예은을 닮은 인물을 말없이 탈을 너머 마주보며,

선아는 틀어 잡히지 않은 반대 손으로 조심스레 주머니를 더듬었다.


아직도 한줌 가량, 부럼이 남았다.

그러나 선아는 섣불리 주머니에서 그 부럼을 꺼내지 못했다.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데서 미루어 보건 데 적어도 지금 눈앞의 인물은 도깨비는 아니다.

그렇다면 아까와 같은 여우일까, 혹은 말로만 들었던 두억시니일까.


과연 이 상대에게 이 부럼이 통하기는 할까.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 부럼을 깨무는 것이 맞을 것인가.

무언가 다른,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은 없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선아는 그제서야 자신이 둘러멘 물건의 존재를 눈치챘다.


지난번 시장에서 자신의 명품시계와 맞바꾼 폴라로이드 카메라.

이유는 모르지만 모든 시장의 도깨비가 눈에 불을 켜고 원했던 이 카메라.


선아는 도깨비 터에서 모란이 실수로 이 카메라를 사용했을 때 일어났던 일을 기억해 냈다.

그래.


이거라면 아마도..


선아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선아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카메라를 돌려 잡아 일그러진 탈의 주인에게 겨냥했다.


그리고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셔터를 눌렀다.


펑!

번쩍!


밤하늘을 찢어버릴 듯한 굉음을 날리며,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마치 섬광탄이 터지는 것만 같은 그 짧은 빛의 폭발의 와중.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눈을 꽉 감고 고개를 돌린 상태였던 선아는 자신의 손목을 쥔 손이 풀렸음을 깨닫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머리핀을 공중에 던졌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우선 이 정체불명의 인물에게서 벗어나려 달려가려 하던 중에..


오른쪽 종아리에 달리는 섬뜩한 느낌과.

동시에 찾아온 불쾌한 깊은 뜨거운 한줄기의 통증과 함께 앞으로 추하게 굴러 넘어졌다.


“아악!”


예상치 못한 엄청난 통증에 선아는 비명을 질렀다.


선아가 바닥을 구르며 잦아드는 빛 무리 사이로 간신히 내려다본 자신의 오른다리는 이미 엉망이었다.


길게 찢어지다 못해 슬릿이라도 새긴 것 마냥 갈라진 바지춤과 그 뒤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피.

지금도 울컥 울컥 붉은 생명을 토해내는 종아리를 보면서 선아는 생각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건 마치 뭔가에 베이기라도 한 듯한-


찢겨버린 다리의 고통을 참으며, 어떻게든 고개를 든 선아의 목에 차가운 무언가가 와 닿았다.

이 상황에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그리고 아마도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피가 묻은 시퍼런 날이 선 금속체.


사극에서나 보아왔던, 어른 팔 길이 정도 될듯한 약간은 휘어진 곡도.


선아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 하기도 전에.

매섭게 날카로운 칼날이 선아의 목덜미를 파고 들었다.


“어린년이 감이 좋구만 기래”


명백히 예은의 것이 아닌 늙은 노인의 목소리.

선아는 자신의 목 울대를 눌러오는 칼의 끝에서, 손잡이를 틀어 쥔 채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찌푸리고 선 인물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제서야 일그러진 탈이 주인의 얼굴에서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금까지 가려졌던 탈 뒤의 인물.


누가 보아도 무당의 것이 분명한 형형색색의 무복,

그리고 그 옷에 절대로 어울리지 않은 낡은 학교가방을 앞으로 둘러멘,

아마도 지금까지 예은의 행세를 하고 있었을 늙은 노파는 칼을 쥔 손에 힘을 더해갔다. 



##



노파는 본 모습으로 돌아온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면서 놀라는듯한 몸짓을 하며 말했다.


“주술이 풀렸구나야. 아주 재미있는 놀음감을 가지고 있구만 기래? 어디서 난기네?”


선아가 바닥을 구를 때 일어난 일일까.

선아가 메고 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처참하게 반 토막이 난 채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기래도 내가 원하는게 이런 시시한 놀음감은 아니지 않갔어. 기래, 어디있네? 네 도깨비가 세운 문은?”


바닥을 구르는 반쪽의 카메라를 발로 툭 차서 옆으로 밀어버린 노파는 선아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섰다.


이로써 확실해 졌다.

이 노파가 원했던 것은 바위산이 세운 문이었다.


단순히 이 세계에서 나가는 것이 목적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상세한 연유는 알 길이 없지만 이것으로 선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절대로.

이 노파를 그 문으로 안내해서는 안 된다.


선아의 촉이 선아에게 말한 것은 그것이었다.


칼을 쥔 노파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감에 따라 선아의 목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선아는 목을 파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통증과, 다리에서 퍼져나가는 자상의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도 노파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대치.

선아가 대답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노파는 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강단이 있구만 기래. 눈기짓을 보아 하이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긴데-”


노파는 선아의 목에서 칼을 거두어 들인 뒤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혀 주저 앉은 선아의 눈높이에 자신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뭐, 대답을 하는데 한쪽 귀는 딱히 필요 없지 않칸?”


노파는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섬뜩.

소름이 선아의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노파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왼손으로 선아의 오른쪽 귀를 잡아 당겼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아의 귀를 향해 칼날을 내리 그었다.


선아의 귀를 향해 내리 찍힌 그 시퍼런 칼날이 선아의 귀에 막 닿아 두 조각을 내려 하는 찰나.


턱- 하고.


누군가가 내민 손에 가로 막혔다.


그리고, 곧 다가올 피하지 못할 고통을 상상하며 눈을 감아버렸던 선아는 약속되었던 고통의 부재에 살포시 실눈을 뜨려 할 때.


아직도 제 위치에 자리한 선아의 귀에 너무나도 반가운 목소리가 와 닿았다.


“익숙한 번쩍거림이라 혹시나 두억시니라도 나타났나 확인 차 와봤더니 이건 또 예상 외로군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맑은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로.

그러나 그 평안한 어조에 어울리지 않는 극도로 화가 난 표정으로.


바위산은 선아를 향해 내리치던 칼날을 비틀어 던져버렸다.



##



챙그랑-

기괴하게 꺾여 부러진 칼날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건 또 무- 컥”


놀란 노파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

바위산의 손이 거칠게 노파의 목 밑을 파고 들었다.


“크억!”


그 억센 완력에 너무나도 손쉽게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 노파가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 것도 잠시, 바위산은 너무나도 간단히, 또 손쉽게 그렇지만 분명히 방금 전보다도 더 거칠게 노파를 돌담에 집어 던져버렸다.


콰앙!


“카악!”


사람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라기보다는 마치 교통사고라도 난듯한 소리가 났다.

마치 바닥으로 쓰러지는 쌀가마니마냥 바닥으로 힘없이 엎어지는 노파를 노려보던 바위산은 흘깃 선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바위산의 눈에 비친 건, 

바지를 적시다 못해 이제는 바닥까지 흘러내리는 피와 흙 바닥을 구르느라 꼴이 엉망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여검사였다.



바닥에 작은 웅덩이라도 만들 기세로 흘러내리는 피에 잠시 움찔거렸던 바위산은 이내 몸을 털어내고 선아를 부축하며 살펴보았다.


“바위산씨..”


긴장이 풀린 탓일까.

아니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일까.


눈앞이 어질거리기 시작한 선아에게 바위산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선생님. 많이 힘드시겠지만 지금은 이걸로 잠시-“


이걸로? 이거라니요? 무슨 소리..신지?

근데 왜 바위산씨는 지금은 빙글 빙글 돌지 않는 거죠? 팽이잖아요?


아니 잠깐만 나 갑자기 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아- 눈앞이 하늘 하늘..


선아의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져 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조금은 둔해졌다.


선아가 홀렸음을 확인한 바위산은 최대한 부드럽게 선아를 다시 눕혔다.

그리고는 벽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강하게 벽에 내다 꽂힌 노파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옮기며 말했다.


“네 이년, 지금까지 일이 다 네 년 짓이었구나. 그리고 그 짊어진 도깨비 방망이는 죽은 물보라의 것이렸다”


도깨비 방망이? 짊어진?

바닥에 드러누운 선아는 몽롱한 가운데 노파가 둘러멘 낡은 학교 가방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참 이상했더랬다.

노파가 예은의 모습이었을 때부터, 이상하리만치 그 가방은 어울리지 않았다.


유행에 민감할 나이의 여중생이 메고 다닐만한 그런 가방이 아니었다.

책가방이라기보다는 등산 가방의 모양에 가까운, 투박한 모양의 낡은 가방.


그런데 어째서 그걸 이때까지 눈치채지 못했을까.


노파의 코앞까지 다가간 바위산은 바닥에 쓰러져 흙을 씹으며 부들거리는 노파의 얼굴을 거칠게 집어 들었다.


“물을 것이 많다. 멋대로 기절하지 마라”


선아가 어지러운 와중에도 분노에 찬 목소리의 바위산이 노파의 얼굴을 짓이겨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무렵.


와그작-

노파의 입에서 익숙한,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너무나도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히이이익!”


쿠당탕-


견과류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한번 본적이 있는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새총에서 발사된 구슬마냥 뒤로 튀어나가는 격한 몸짓.

그리고 무너져 내리는 무언가.


“윽-“


선아는 바위산의 홀림이 풀림과 동시에 느껴지는 두통과.

어설픈 마취에서 풀려나듯 다시금 찾아온 끔찍한 다리의 고통을 느끼며.


미친듯한 속도로 스스로 뒤로 기겁하며 튀어나가 돌담 벽을 무너뜨리며 처박혀버린 바위산과.

입에서 핏덩이와 흙덩이에 섞인 견과류의 찌꺼기를 뱉어내며 서서히 일어서는 노파를 번갈아 보았다.



##



“하악- 이.. 이런 제기랄”


당했다.

바위산은 지금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가져다 박았는지 무너져버린 돌 더미에 몸이 반쯤 박힌 채로, 바위산은 어떻게든 몸에 힘을 주어보려 했지만 부럼의 효과는 너무나도 확실했다.


“감히.. 한낱 잡귀 따위가 본녀의 몸에 손을 대다니..”


바위산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이 노파는 비틀거리며 벽을 지지대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에 충돌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듯 동작은 많이 더뎠지만 노파의 목소리에는 격노를 넘어선 광기가 서려있었다.


몸에 힘이 돌아오지 않아, 무너져 내린 돌 더미 안에서 상체만 간신히 바깥으로 내민 채 몸부림을 치는 바위산을 같잖다는 눈으로 내려보며, 노파는 메고 있던 책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부피상, 또 길이상 절대로 둘러멘 가방 안에서 나올 수 없는 커다란 금속 막대기를 끄집어 내기 시작했다.


선아는 다리를 엄습하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돌 더미에 갇혀버린 바위산을 걱정하면서도 노파가 가방에서 꺼낸 금속 체에서 그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노파가 가방 안에서 꺼낸 막대기는 총 두 개.


어른의 팔길이 만한 황동색의 그 금속 막대는 그리고 그 끝에 마치 나뭇가지에 열린 열매마냥 주렁주렁 매달린 같은 색의 방울들을 매달고 있었다.


가방에서 꺼내지는 작은 움직임에도 요란스런 소리를 내는 요사스러운 방울소리에 선아는 다시금 가슴 한 켠이 후벼 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노파는 막대를 양손에 틀어 쥔 뒤 흘깃 선아 쪽을 한번 흘겨보았다.

그리고 이미 선아가 방해를 하기에는 무리인 상태라고 판단했는지, 노파는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은 선아를 무시하고 선 자리에서 방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딸랑- 


불길하다.


딸랑.

딸랑.


정말 무언가, 매우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선아는 지금 이 쉴새 없이 흔들려 대는 방울소리를 타고 찔러 들어오는 이 불길하고 무서운 촉이 어딘가를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그 느낌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바위산이 충돌로 무너뜨려버린 담장 너머.

아까까지는 잘 보였던 한 골목의 끝.


그러나 어떻게 영문인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던 그 골목의 끝에서부터 희뿌연 안개가 서서히 깔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불길함은 그 안개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 불길함의 근원은 지금 그 안개 안에 선 인형(人形), 정확히는 안개 속에서 아른거리기 시작한 키가 작은 한 어린 아이 크기의 무언가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처럼 보였던 형상은 노파의 방울 소리에 맞추어서,


딸랑-딸랑-

한걸음.


딸랑-딸랑-

또 한걸음.


서서히 안개에서 벗어나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걸음 한걸음이, 선아에게는 가슴을 짓눌러오는 무게 추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선아의 가슴을 깔아 뭉갤듯한 불길한 기운을 풍기며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들어낸 이는..

마치 여자아이처럼 긴 생머리를 빗어 내린 하얀 피부의 소년이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또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방울소리가 들릴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마치 죽은 시체 같은 움직임으로.


그렇지만 분명히 지금 선아의 가슴을 찢어버릴 정도로 경보를 울려오는 그 소년은.

한걸음, 한걸음을 옮겨 다가올 때마다 눈에 띄이게 그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이런 제길! 육실할!”


바위산은 소년의 존재를 눈치채고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대기 시작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소년을 끌어대는 멈추지 않은 방울소리가 빨랐음일까.


아니면 이제는 소년이 아닌 거인이라고 불러야 할만큼 덩치가 커져버린 이가 걷는 한걸음이 점점 멀어져 왔음일까.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 바위산이 어찌할 새도 없이, 거인소년은 어느새 바위산이 지근거리까지 다가와서, 


“으아아악!”


바위산의 머리를 마치 달걀이라도 쥐듯 움켜쥔 채 순식간에 돌더미에서 뽑아냈다.


“바위산씨!”


혹시나 그대로 목이 뽑혀버리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거칠었던 그의 행위에 선아는 비명 섞인 목소리로 바위산의 이름을 불렀다.


도대체 지금 눈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눈앞의 이 괴물은 도대체 뭐지?


딸랑- 딸랑-


선아는 이 괴물의 정체는 몰라도, 지금 이 괴물이 저 방울을 흔들어대는 노파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 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행히 거인 소년은 바위산의 몸에서 목을 뽑아버리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에게 충분한 고통은 주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금 바위산의 머리를 당장이라도 터트려버릴 듯 강하게 쥐어 짜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선아는 무표정은 거인 소년의 손아귀에 점점 더 힘이 실리는 것을 보았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바위산의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도대체 저 괴물은 뭐지?

어디서? 갑자기? 도대체 왜?


잠깐.

그러고 보니 바위산은 저 노파가 가지고 있는 가방이 죽은 도깨비의 도깨비 방망이라고 했다.


근데, 그 도깨비.

어떻게 죽었다고 했더라?


그래, 맞다.

..머리가 박살이 나서?

 

“으아아아아아악!”


이제는 정말로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질러대는 바위산을 보면서, 

그리고 그 머리를 쥐어 터트리려는 거인 소년을 보면서.


선아는 깨달았다.

지금 이 괴물이 바위산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두억시니였다.


누군가 마치 일부러 숨겨놓기라도 한 듯, 찾으려고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찾지 못했다는.

복합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원래대로라면 단순해야 할 존재. 


그리고 아마도.

지난번 도깨비 살해범.


“으..으아악! 으아아아아악!”


바위산의 비명은 더 이상 비명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의 비명은 이제는 언제든 마지막 단발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선아는 지금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이대로는 정말로 바위산이 죽어버린다.


그렇지만 이미 찢어져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다리로 지금 선아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이 있을까.


딸랑- 딸랑-


잠깐, 저 방울. 방울소리.

정확한 방법은 알 수 없어도 저 방울소리가 두억시니의 행동과 연관이 있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설령 선아의 몸 상태가 정상이었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저 괴물이 아니라,

지금 선아가 어떻게든 해야 할 쪽은 바로 저쪽이다.


우선 저 방울을 흔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필사적으로 주위를 살피는 선아의 눈에 반 토막이 난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들어왔다.

아마도 더 이상 기능을 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던지는 용도로는 쓸 수 있을 것이다.


선아가 기절할 것 같은 다리의 통증을 견디며,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부서진 카메라를 잡으려던 순간.


뚝- 하고.


바위산의 비명이 멎었다.

그리고 바위산의 비명이 멎음과 동시에, 두억시니의 움직임도 멎었다.


멈추지 않은 것은 딸랑- 딸랑- 하는 불길한 방울소리뿐.


지금까지의 소란이 무색하게끔.

적막이 찾아와버린 공간 안에서는 그저 방울소리만이 울려댔다.


“아.. 안돼. 안돼! 바위산씨!”


이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바위산과 두억시니.

오열하는 듯한 선아의 비명 소리.

더욱 더 바쁘게 울려대는 요사스러운 방울 소리.


이 격동하는 난잡한 혼란의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이제는 움직임을 멈추어버린 두억시니의 왼쪽 다리 뒤에서..


차분한 걸음으로, 그렇지만 평소의 그녀 다운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그렇지만 선아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너무나도 화려한 색의 무복을 입은.


승희가 나타났다.


“만신이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1. 설마 2018.02.04 00:42 신고

    바위산 죽은거??????

  2. 멋저용 2018.02.05 08:58 신고

    진짜.. 진짜 글 너무 재미나게 쓰시네요
    몰입도 최고에요. 정말 기다리게 만드네요 다음편을 ㅠㅠ
    좋은글 너무 감사합니다.

  3. 돗가비친구 2018.02.23 10:43 신고

    드디어 승희가 등장하네요!
    기다렸습니다 승희씨 ㅠ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