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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배틀로얄

by 담쟁이저택 2023. 6. 18.

 

「수감번호 299932번 오늘 형을 집행한다」

 

 

무미건조한 스피커 건너에서 들려오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

수감번호 299932번으로 지칭된 사형수 이용택은 자신의 독방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사형 폐지국.

아니 실질적 사형 폐지국.

 

 

1997년 12월 30일 이후로 대한민국에서는 단 한번도 집행된 적이 없었던 사형수에 대한 형벌 집행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재개되었다.

 

 

용택이 수감된 교도소에 있는.. 아니 있던 사형수는 총 7명.

그 중 두 명은 이미 어제와 그저께 형이 집행이 되었고, 오늘은 용택의 차례가 찾아왔다.

 

 

"빌어먹게 더운 날이군"

 

 

용택은 자신이 수감된 독방으로 다가오는 간수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얕게 읊조렸다.

 

용택의 죄명은 연쇄살인.

전국 각지를 돌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살해한, 7년전 세상을 들썩였던 30대 승무원 13분할 사건의 범인이었다.

 

잔혹했던 시신의 형태와는 별개로, 너무나도 증거를 남기지 않았던 용의주도했던 용택.

그런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네 명의 피해자를 더 내고 결국 체포될 때까지, 그는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워낙에 체구가 좋고, 괴력의 소유자였던 탓에, 그를 체포할 때 그와 육탄전을 벌였던 형사 중 한 명은 다리에 평생 남을 철심을 박게 되기도 했었다.

 

"씨발, 가는 길에 한 명만 더 조지고 갔으면 딱 좋겠구만"

 

마지막 가는 길까지, 결코 반성할 마음 따위는 없는 용택.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건지, 용택의 독방을 열고 들어온 세 명의 간수는 평소답지 않게 조심 조심 용택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형장으로 향하는 호송차로 그를 데려갔다.

 

강철로 만들어진 호송차 안에 대기하고 있던 무장인원은 둘.

8년차 베테랑 현식과 이제 막 이 일을 시작한 인규였다.

 

간수들로부터 용택을 인계 받아 용택의 수갑을 호송차 안 구속 고리에 걸고는 자신의 자리를 잡아 앉은 현식의 표정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간신히 사람 너댓명이나 들어갈까 싶은 이 작은 깡통 안에, 거대한 덩치의 용택이 들어앉자, 안 그래도 비좁았던 공간은, 서로의 숨쉬는 공기마저 느낄 수 있을 거리가 되어버렸으니까.

 

부르릉 거리는 기분 나쁜 시동의 진동소리를 느끼고, 호송차가 출발한 뒤 얼마나 됐을까.

 

용택은 바짝 긴장해 있는 인규에게 말을 걸었다.

 

"거 초짜 형씨, 그러다 오줌이라도 싸겠소?"

 

비웃음 잔뜩 섞인 용택의 말.

그런 말을 듣고도 뭐라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인규를 두고 현식이 그의 말을 받았다.

 

"죽으러 가는 양반이 넉살도 좋네"

 

"뭐야 이 새끼야?"

 

죽는다.

죽으러 간다.

 

딱히 죽는 게 무섭지는 않았던 용택이었지만, 현식의 말이 기분 좋았을 리가 없다.

 

"왜, 아주 내가 지금 손이 묶여있으니까 우스워 보이나 본데, 왜 내가 이거 한번 끊을 수 있나 없나 한번 볼까? 이거 만약에 끊어지면 내가 네 그 고사리 같은 모가지 꺾는데 몇 초나 걸릴 거 같아?"

 

위협적으로 수갑 낀 손을 휘둘러 대는 용택.

 

애초에 사형수 인도용으로 특수 제작된 수갑이 그렇게 말처럼 쉽게 끊어질 리가 없었지만, 인규는 그의 몸부림에 자신의 가슴 깊은 곳부터 소름이 끼쳐 오르는걸 느꼈다.

 

그런 인규와는 다르게 무표정하게 용택을 바라보던 현식은 짧은 한숨을 쉬고 혀를 차며 말했다.

 

"역시, 그 양반들이 고른 데는 이유가 있었구만"

 

"뭐?"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을 짓는 용택을 향해 살짝 몸을 기울인 현식은 잠시 고민을 한 뒤 말문을 열었다.

 

"어이, 사형수양반, 내가 지금부터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할거야, 잘 들어둬, 당신 지금 자기가 가는 데가 어디 인줄은 알아?"

 

"뭐라는 거야, 이 병신이, 사형장 가는 길일 거 아니야? 무슨 뻔한 이야기를.."

 

"아니"

 

딱 잘라 용택의 말을 끊어버리는 현식.

뭔가 잘못 들었다는 듯한 불쾌한 표정의 용택의 눈치를 살피며 인규가 슬그머니 끼어든다.

 

"선배님, 설마 또 이야기를.."

 

"어, 또 할거야. 이런 놈이기 때문에 사실 더 할거야"

 

"야 도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자빠져있어? 똑바로 이야기 안 해?"

 

무슨 말장난 같은 소리에 더 흥분해서 날뛰려는 용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현식이 말한다.

 

"당신이 가게 될 곳은 사형장 같은 데가 아니야, 아니 정확히는 사형장에 가기는 갈 거야, 그리고 그 뒤에 남해에 있는 무인도로 옮겨질 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살아있는 상태로 말이지"

 

"뭐?"

 

의문을 던지는 용택을 무시하고 현식은 말을 이어나간다.

 

"당신도 바보는 아닐 거 아니야, 당신, 수십 년 동안이나 집행한적이 없었던 사형이, 왜 갑자기 이렇게 단기간에 몰아서 처리될 거 같아? 벌써 이 교도소에서만 세 명이야, 다른 교도소는 어떨 거 같아?"

 

"무슨 개소리가 하고 싶은.."

 

"당신, 오늘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그리고 다른 사형수들도 아직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고. 당신은 이제 일종의 스포츠 선수가 된 거야. 축하해. 당신, 의외로 팬이 많아"

 

"선배님, 아니 정말로 또 이러시는 거 나중에 발각이라도 되시면 어쩌시려구요"

 

인규는 당황해서 현식을 말리려 들지만, 현식은 손짓으로 그런 인규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 용택의 표정은 의구심에 점점 더 일그러져간다.

그런 용택의 표정을 읽은 현식은 자세를 고쳐 잡고 설명에 들어간다.

 

"잘 들어, 사형수 아저씨. 아저씨는 지금 인생에 못 가져 본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양반들한테 선택 받은 거야. 나도 정확하게 누군지는 몰라. 하지만 근 40년을 멈춰있었던 사형제도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양반들이니, 보통 힘 있는 사람들은 아닐 거야"

 

"..."

 

"내가 오늘 맡은 일은, 당신 사형장에 내려놓고, 그리고 잠시 뒤에 죽은 걸로 처리된 당신 다시 집어다가 진해에 있는 부두에 내려놓는 거야, 당신은 아마 약물이 됐던, 뭐가 됐던 아마 잠들어있는 상태겠지"

 

일그러져있던 용택의 표정이 조금씩 풀려간다.

 

"그리고 거기게 가면 당신은 남해에 있는 이름도 없는, 아마 뱃사람들이나 알 작은 섬으로 옮겨지고, 거기에서 아까 말한 힘있는 양반들이 짜놓은 판에 던져지게 될 거야. 그리고 지금 전국에서 그리로 모이고 있는 사형수들을 만나게 되겠지, 아저씨. 배틀로얄이라는 영화, 아니면 만화 본적 있어?"

 

자신도 모르는 새 경청을 하고 있던 용택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 섬은 말이야. 이미 각종 전자장비들이 잔뜩 들어찬, 일종의 촬영장이야. 나도 지난번에 딱 한번 가봤었는데, 그때도 여기 저기에 카메라랑 마이크들 설치하느라 바쁘더군, 내가 본 것만 수백 개는 넘을 거 같아. 아마 섬 전체를 무대로 만들려는 모양이지. 아저씨가 영화를 봤다면 이해하기가 쉬울 텐데 뭐 안 봤다니 어쩔 수 없지, 간단하게 말해줄게"

 

들숨을 크게 들이쉬는 현식.

옆에서 계속 우려의 눈빛을 보내는 인규를 무시하고, 날숨과 함께 현식은 용택의 미래를 고한다.

 

"아저씨는 거기에서 사람을 죽이면 돼. 정확하게는 다른 사형수들과 함께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하면 돼. 최후의 한 명이 나올 때까지"

 

"뭐?"

 

어처구니 없는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

 

용택은 성질머리가 뻗혔다.

 

"이런 돌은 새끼가,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너 내가 아주 호구로 보이.."

 

"앞에 먼저 간 두 명한테는 이 이후 이야기도 해줬어. 더 듣고 싶지 않다면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 무운을 빌어"

 

칼같이 용택의 말을 잘라버리는 현식. 이미 얼굴 표정 자체에 '걱정'을 숨길 수가 없는 인규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는 호송차 철창 밖 풍경에 눈을 돌린다.

너무나도 냉정하게 말을 끝내버린 현식의 반응.

 

 

용택은 순간 사고회로가 따라가지 못했다.

 

'뭐? 내가 지금 사형장이 아니라 섬에 가는 거라고? 그리고 뭐? 거기서 다른 사형수들이랑 서로 찌르고 찔리라고? 그런 미친 소리가 세상에 어디 있나'

'무슨 개소리를 저렇게 정성 들여서 하고 자빠졌어? 미친 새끼가 도대체 어디서 시나리오를 쓰고..'

 

...

 

'아니 잠깐만, 근데 저 새끼가 한말,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갑자기 왜 몇십 년 만에 사형이 집행이 돼? 그것도 사흘 사이에 여기서만 나까지 세 명이야'

 

'그러고 보니, 나도, 또 앞에 먼저 갔던 옆옆방 그 새끼도 이제 보니 찾아올 가족도 없는 사람이잖아?'

 

...

 

'씨발.. 저 새끼가 하는 말이 진짠가? 아니 씨발 도대체 진짜면? 진짜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밑져야 본전인데.. 저 새끼한테 뭐라도 좀 더 들어봐야 하나? 앞에 간 두 새끼들이 다 들었다면, 나만 모르고 가면 불리해질 거잖아?'

 

약 수분간의 침묵.

그 침묵 끝에 용택은 마음을 굳혔다.

 

"으흠!"

 

헛기침을 하는 용택.

그 헛기침에 자연스레 시선을 돌린 현식과 용택은 눈이 마주친다.

 

"거.. 형씨. 그 아까는 내가 좀 미안했소. 그 이야기 계속 좀 해 주소"

 

멋쩍어 하는 용택의 모습에, 현식은 잠시 고민을 하고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내가 하는 말 못 믿는 것도 이해는 해,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못 믿겠어. 세상에 사람 목숨으로 오락거리를 만들 거라 누가 생각을 했겠어. 그러니까 영화나, 만화에서나 다룰 이야기지, 현실로 끌려 나올 이야기가 아니지"

 

살짝 코웃음을 치는 현식

자조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그 웃음에 용택은 더더욱 현식의 말에 집중했다.

 

"근데.. 내가 봤을 때 이 정부는 너무 오래 전부터 미쳐 돌아간 거 같아. 세상에 누가 어떤 힘으로 조종을 했는지는 몰라도 정부차원에서 짜고 있는 판이니까 이 살인게임은"

 

"선배님!"

 

"잘 들어 아저씨, 아마 누군가한테 나중에 한번 더 설명을 들을 테지만, 내가 지금 요약해서 간단하게 말해주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게임의 참가자는 전국의 사형수들이야. 아마 일부러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을 고르고 있는 거 같아. 아마 아저씨도 가족 없지? 아무튼 사형수들 중에서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은 남녀불문하고 아마 대부분 끌려올 거야. 아마.. 스무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뭐? 여자도 있다고?"

 

갑자기 얼굴에 희색이 도는 용택을 보며 현식은 혀를 찬다.

 

"어째 이 이야기만 하면 다들 반응이 똑같네, 그래 맞아 여자도 있어. 내가 며칠 전에 직접 진해에 내려놨으니까 그건 확실해. 하지만 아저씨가 알아야 할건 그게 아니라 이 게임의 규칙이야. 잘은 몰라도 아마 어기려는 순간 아저씨는 이 세상 사람은 아닐거야"

 

용택은 침을 꿀떡 삼킨다.

 

"첫째, 설치된 카메라도 마이크도 절대로 일부러 부수면 안돼. 싸우거나 뭔가 일이 터지는 가운데 부서지는 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절대로 이 게임 판 짠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는걸 방해하는 짓거리는 하면 안돼"

 

"둘째, 사람을 죽이던, 강간을 하던, 뭘 하던 거기는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 치외법권이야. 근데 내가 알기로 그걸 최대한 카메라 앵글에 잘 잡히는 곳에서 하는 게 좋아. 만약에 일부러라도 뭐 애초에 사각지대가 존재하는지 어떤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데를 일부러 노리고 숨어서 행동하면 안돼. 이유는 아까 전과 같아"

 

꿀떡.

 

"셋째, 이건.. 정말 굉장히 중요한 거야, 지금 내 귀에 꽂혀있는 이 수신기 보여?"

 

고개를 끄덕이는 용택.

현식의 귀에는 귀걸이 형 수신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아저씨도 아마 비슷한걸 받을 거야. 그거 혹시나 고장 내거나 하지 않도록 조심해."

 

꿀떡.

 

"그건, 왜 그러는 거요?"

 

"신입, 네 수신기 저 아저씨 귀에 잠깐만 붙여줘 봐"

 

용택의 질문에 현식은 대답 대신 인규의 수신기를 바랬다.

 

"선배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인규가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자 현식은 직업 인규의 귀에서 수신기를 빼 용택의 귀에 가져다 댄다.

 

"선배님!"

 

깜짝 놀라 현식을 막으려 드는 인규였지만 너무 빠른 현식의 행동에 이미 수신기는 용택의 귀에 가져다 대져 있었다.

 

"자, 아저씨 어때? 뭐가 좀 들려?"

 

"잘.. 뭔가 지직거리기는 하는데 그뿐인거 같소만"

 

"그래 맞아, 그 소리야"

 

현식은 인규에게 휙 하고 수신기를 던져 돌려준다.

 

"일종의 전파간섭? 같은 거야. 같은 종류의 수신기가 일정범위 안에 같이 존재하면 노이즈를 만들어 내지, 그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건.."

 

용택이 말한다.

 

"근처에 누군가 있다는 이야기로군"

 

"정답. 아저씨 똑똑하네, 앞에 두 명은 내가 설명해줄 때까지 몰랐는데"

 

 

박수를 짝짝 치는 현식.

용택은 무언가 뿌듯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마 실제로 게임에 돌입하면 이 수신기는 귀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강제로 고정시켜 놓겠지. 뭐, 대충 붙여놓는 이유는 뻔하지. 위치추적 이런 게 아닐까 싶은데, 아무튼, 이런 추가기능이 있다는 것만 알아둬"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을 하는 용택.

 

 

"그리고 마지막 넷째, 아까 말한 최후에 남는 한명, 바꿔 말하면 이 정신 나간 게임의 우승자는 무슨 상으로 가짜 신분을 만들어서 한몫 두둑히 챙겨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준다는 모양이야. 뭐 보안차원 때문에라도 나는 그 약속이 지켜질지 어떨지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모양이야."

 

 

그런 용택을 빤히 바라보던 현식은 잠시 한숨을 돌리고 다시 말을 이어나간다.

 

 

"근데 말이야, 아저씨. 사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아저씨랑 또 앞에 두 다른 아저씨들한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의아해하는 용택.

 

 

"그게 뭐요?"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는 현식.

 

잠시 뜸을 들인 후, 그는 매우 진지한 눈빛으로 용택을 마주보며 말을 잇는다.

 

"아저씨가 아까 배틀로얄이라는 영화를 안 봤다고 했는데 말이야. 사실 이 영화가 딱 지금 상황이랑 비슷한 내용이거든. 서로 강제로 어디에 가둬놓고 죽고 죽이게 만들고. 사람들은 그거 구경하고 말이야."

 

꿀떡.

 

"아저씨, 난, 이 판 짠 놈들이 마음에 안 들어"

 

 

현식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해진다.

 

 

"난, 개인적으로 아저씨가 싫어. 난 사람의 목숨이 소중하다고 생각해, 근데 아저씨는 살인자잖아. 그것도 연쇄살인범"

 

 

"..근데 왜 나한테 이런걸 알려주는 거요?"

 

 

용택은 자신을 연쇄살인범이라고 부르고 또 싫다고 말하는 현식의 말에도 처음 대화를 나눌 때처럼 불쾌해하지 않는다.

현식은 말을 계속해 나간다.

 

"저 위에서 이 판 짜고 있는 새끼들은 더 싫어. 마치 아저씨 목숨이, 다른 사형수들 목숨이, 무슨 값 싼 장난감이나 되는 것 마냥 부리는 게 싫어. 아저씨는 지금 사람을 죽이고 그 죗값을 치루고 있는 중이지. 그 새끼들은? 아마 어디서 무지 비싼 와인이나 쳐먹으면서 아저씨들 목숨 가지고 내기나 하고 있을 거니까. 난 그게 너무 싫어"

 

"..."

 

용택은 말을 잇지 않는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영화 마지막에서는 말이야, 몇몇 참가자들이 서로 협력해서 결국 그 판을 깨고 나오거든. 그 게임의 시스템을 부수고 정부 놈들한테 크게 한방 먹이는 뭐 그런 내용인데."

 

"..."

 

"난, 혹시라도 아저씨가 다른 아저씨들이랑 같이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싶어서. 정확한 방법은 나도 모르겠지만,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그럴 수 있을까 싶어서. 그래서 이런 이야기 하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이 게임, 최후의 한 명이 된다고 해도, 살아나갈 거라는 보장이 없어. 그럴 거면 차라리, 다른 쪽에 걸어보는 게 낫지 않겠어?"

 

끼이익-

 

호송차가 정지한다.

아니 지금까지 신호에 걸릴 때마다 섰다 갔다를 반복했지만 이번것은 다르다.

 

도착했다.

목적지에.

 

사형 집행장에.

 

밖에서부터 차 문이 열리고, 현식과 인규와 비슷한 옷을 입은 두 명의 무장요원이 용택의 수갑을 풀기 시작한다.

동료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고 현식은 용택의 눈을 마주본다.

 

그런 현식에게 용택이 묻는다.

 

"형씨,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소"

 

"뭐? 말해 아저씨"

 

용택은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보고 몸을 떨기 시작한다.

 

그리고.

 

"크하하핫"

 

갑자기 크게 소리지르며 허리가 젖혀질 정도로 웃어 제낀다.

 

깜짝 놀란 현식과 인규의 눈동자가 커진다.

 

"크크.. 아까 말한 여자 사형수, 이뻤소? 몸매는?"

 

"뭐?"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얼이 빠진 현식.

그런 현식을 비웃으며 용택은 속사포같이 말을 토해낸다.

 

"크큭 내 인생 마지막에 이런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이보쇼 형씨. 사람 잘못 봤소. 나는 아마 거기에서도 제일 미친 새끼가 될 거요. 그리고 아까 말한 여자 사형수는 내가 꼭 가기 전에 맛을 보고 가도록 하지.뭐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거기 있는 년들 전부 다 먹어보면 그 중 하나는 걸리겠지"

 

"이.. 무슨.."

 

현식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런 현식의 반응을 즐겁게 비웃은 용택은 새로운 두 명의 무장요원들의 손에 이끌려 사형장으로 향한다.

 

"보아하니, 형씨는 싫어도 날 몸 건강히 날라줘야 하는 모양인데, 정보 고맙소 형씨, 내 이 사례는 꼭 다음 생에 당신 죽이기 전에 하리다"

 

넋이 빠져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현식의 옆에 인규가 선다.

 

"선배님, 도대체 어쩌시려고 매번 이러세요. 저는 솔직히 이유도 모르겠고, 이제는 저 사람 반응 보면서 소름도 끼칩니다"

 

"인규야.."

 

걱정 반, 두려움 반이 섞인 인규의 얼굴을 보며, 현식이 대답한다.

 

 

 

 

 

 

 

 

 

 

 

"재미있잖아? 저 병신, 내가 한 말 진짜로 믿은 거 같은데? 진짜 재미있다. 이번 반응은. 지난번 두 명은 끝까지 긴 가민가 하면서 갔잖아?"

 

"아니 그건 당연히 그렇죠, 처음 사형수한테는 무슨 약품 생체실험에 강제 참가된 거라고 했고 두 번째는 화성 테라포밍이었잖아요. 그게 말이 되요?"

 

"아니 무슨 이건 말이 되냐? 지어내느라 혼났구만"

 

"아니 근데 진짜 대체 이러다가 이거 위에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시말서 쓰시는 선에서 안 끝나실 거 같은데"

 

현식은 웃으며 대답한다.

  

"알게 뭐냐, 저 새끼 어차피 이제 곧 뒈질 텐데, 누가 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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