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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만다라케

by 담쟁이저택 2023. 6. 18.

https://mansionivy.tistory.com/92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배틀로얄

「수감번호 299932번 오늘 형을 집행한다」 무미건조한 스피커 건너에서 들려오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 수감번호 299932번으로 지칭된 사형수 이용택은 자신의 독방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사형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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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케

 

혹은 맨드래이크. 학명 Mandragora officinarum

맨드래이크속에 속하는 식물들의 일반적인 명칭.

 

전설에서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면삼의 이미지로 많이들 알려져 있지만, 사실 실제로 존재하는 만다라케는 그렇게 희귀한 생물이 아니다.

실제로 포르투칼 남부나 북아프리카 지방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그저 흔한, 그런 식물일뿐.

 

소설 속에서 인간의 형체를 띄고 있다고 그려지는 건, 아마도 그 뿌리가 인간의 하체를 많이 닮아서라는 설이 가장 지배적이다.

 

그러나, 

 

한달 전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직 공무원으로 발탁되어 이제 막 교육을 마치고 오늘 처음 현장에 배치된 윤석환 박사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분명히 또 눈을 깜빡였어"

 

그의 눈앞에 위치한 진공관형 화분 안에서는 분명히 인간의 얼굴을 한 만다라케가, 그것도 심지어는 표정에 변화까지 있는 인면삼이 자리잡고 있었다.

흙 위로 반쯤 드러낸 얼굴에는 분명한 눈, 코, 입이 있었고.

 

심지어는 그 코를 벌렁거리기도 눈을 깜빡이기도 했다.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식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석환은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고 또 알아왔던 모든 것이 부정 당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조금 이상하기는 했었다.

 

과장급 연구원 모집이라는 공고를 보고 지원한 공무원직이긴 했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정확히는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어간 이후부터 무언가 필요 이상으로 사상과 과거를 검증 당하는 느낌.

 

이미 십 수년 이상 연락하고 지내지도 않았던 외숙부에게서 무슨 무슨 나랏일 하는 기관에서 너 뒷조사 하는 듯한 전화를 받았다고 들었을 때는

솔직히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 자리는 무엇을 하는 자리일까.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하기에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사람을 가려내는 것인가.

 

궁금증을 품고 시작된 경력사원 연수.

 

석환은 일단 최종 합격자가 자신 하나라는 것에도 놀랐지만, 그 무엇보다 한달 가량 진행된 교육기간 동안, 전문지식이나 일에 관련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더 신경이 쓰였다.

 

그 한달 동안 석환이 받았던 것은 정신교육.

 

정확히는 비밀엄수에 관한 것과, 국가 안보, 보안유지 같은 정신트레이닝 뿐. 계속해서 반복되는 똑같은 레퍼토리에 석환이 이러다가 정말로 내가 브레인워시라도 당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 즈음, 그는 교육이 끝났음을 통보 받았다.

 

그리고 배정받은 그의 첫 근무지.

 

서울 근교의 한 건물 지하.

 

석환도 가끔씩 국가 기밀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기관이, 실제 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회사명패를 걸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건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예상 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석환이 출근한 그 건물은 민간에는 과거부터 사형수들을 교수형 시키는데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식물학박사 연구직 공무원이 이런 곳으로 출근을 하리라고,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었다. 사형판결을 받는 죄수는 있어도 실제로 사형을 당하는 죄수는 없는..

그렇지만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약 한달 전부터 갑작스레 그 멈춰있던 사형집행이 재기되었다.

 

 

벌써 이 시설에서 실제로 사형을 당한 사람만 어제까지 다섯.

 

세간에 모든 언론매체들은 갑작스레 치워지는 이 '정의구현'에 온갖 관심이 쏟아내고 있었지만 그들은 막상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모르는 진실을, 출근 첫날인 석환은 벌써 깨닫고 있었다.

 

그들은 교수형을 '당하고' 있는 거다.

이 만다라케를 위해.

 

교수형을 당한 죄수는 온 몸에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액체를 뿜어내면서 사망한다.

그리고..

 

전설 속의 만다라케는 그 교수형을 당한 죄수의 정액에서 피어나는 것으로 흔히들 묘사가 되고는 한다.

전설은 전설일뿐, 고증을 하고 뭐하고 할 것도 없는 문제일 테지만..

 

마치 애완동물에게 물을 배급하는 장치마냥, 혹은 병원에서 링거액을 떨어뜨리는 장치마냥 한 방울 또 한 방울씩.

 

 

남자라면 익숙하지 않을 수가 없는 우유 빛 점액질 액체를 한 방울씩 떨어트리는 쪽에 양쪽 뿌리를 내밀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삼을 보고 있자니, 석환은 도무지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많이 놀랐나 봐요, 윤박사님?"

 

화들짝.

 

깜짝 놀라 바라보고 있던 만다라케에서 눈을 뗀 석환.

그가 시선을 돌린 연구실 입구에는 아까 짧게 인사를 나눈 자신의 사수이자 선임연구원인 김선아 박사가 있었다.

 

양손에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달랑거리며 연구실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선아. 

왼손의 것은 홀짝거리며, 오른손의 것은 상냥히 석환에게 건네며 그녀는 말을 이어나간다.

 

"아메리카노, 아직 취향을 몰라서 일단 가장 기본적인 걸로 샀어요. 조금 뜨거우니 조심해요"

 

"아 네, 감사합니다. 김박사님"

 

공손히 양손으로 컵을 건네 받는 석환.

슬리브를 끼워둔 탓인지 커피 컵 뚜껑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와는 달리, 손에는 그다지 큰 영향이 없다.

 

"저도 처음 봤을 때는, 윤박사님처럼 저도 많이 놀랐.. 아니 솔직히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내가 지금 무슨 괴물을 보고 있는 건가 해서"

 

이해한다는 듯, 커피를 홀짝거리며 선아가 말을 잇는다.

 

"근데 막상 보다 보니까 이게 또 귀여운 거 있죠. 지금은 그냥 눈만 깜박거리지만 있다가 저녁쯤 되면 하품도 하고, 근처에 있는 잔뿌리로 얼굴도 긁고 그래요"

 

손으로 얼굴을 긁는 시늉을 하는 선아.

그녀의 행동은 마치 고양이의 그것과 비슷했다.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만다라케를 대하는 그녀를 보며 석환은 내심 놀란 감정을 감춰야 했다.

그런 석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아는 만다라케가 들어있는 투명한 화분을 살피며, 상태를 확인한다.

 

"어디 보자.. 영양제 양이 얼마 안 남은걸 보니, 아마 오늘은 제공자가 도착할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그러면 그때부터가 정말로 우리 일의 시작이에요, 그 전까지는 조금 편하게 쉬고 있도록 해요"

 

사무적으로 눈앞의 괴물의 상태를 고하는 선아.

석환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진다.

 

"김박사님, 죄송합니다만, 도대체 저희는 뭘 보고 있는 건가요? 그리고 지금 보고 계신 그 영양제며, 아까 말씀하신 제공자며.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요?"

 

잔뜩 긴장한 채 질문을 던진 석환을 선아는 귀엽다는 듯이 쳐다본다.

무언가 여자가 남자를 귀여워한다기보다는 누나가 동생을 귀여워 하는 느낌으로.

 

그리고는 근처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말문을 연다.

 

"식물학 박사쯤이나 되시는 분이니, 만다라케 전설 정도는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네 맞아요. 제가 말한 제공자는 지금 최근에 쭉쭉 죽어나가고 있는 사형수들, 그리고 저 영양제는 거기에서 채취한 정액 샘플이죠"

 

"아니, 도대체, 여기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저 만다라케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거구요?"

 

쉴새 없이 질문을 던지는 석환을 보며 선아는 키득거리며 웃는다.

 

"석환씨는 궁금한 게 참 많네요. 이해해요. 사실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계속해서 한 손에 들고 홀짝였던 커피를 내려놓은 뒤, 선아가 말을 잇는다.

 

"그럼 차분하게 설명해 줄게요. 지금 보고 있는 건, 아마도 우리가 들어서 알고 있는 만다라케가 맞아요. 일반 학술적으로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전설에 나오는 그 녀석이에요"

 

설명을 해나가는 선아의 손가락이 커피 컵을 천천히 훑는다.

 

"최초 발견일자는 대충 반년 전, 발견지는 일본 쿠슈의 미야자키 현. 생활고로 목매달아 자살한 한 30대 남성 시체밑에서 발견됐어요"

 

"일본이요? 아니 일본에서 발견된 게 왜 여기까지.."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왔어요. 정확히 뭘 주고 사왔는지는 모르겠어요. 뭐 그게 큰 돈이 됐던지, 국가기밀이 됐던지, 뭐가 됐던지, 아마 싼값에 들여오지는 못했다고 들었어요"

 

그 이상은 정말로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 하는 선아.

 

"그리고 처음에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지금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표정을 보인다거나 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사람 얼굴이 새겨진 도라지 같은 느낌이었지, 제대로 표정을 가지고 또 이만큼 덩치도 커지기 시작한 건 영양제를 맞고 나서부터"

 

그녀는 처음 만다라케를 봤을 때를 상기하는 듯 하다.

 

"재미있는 건, 우리 식물계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는걸 아마 이 나라 높으신 분들은 벌써부터 파악하고 계셨나 봐요. 만다라케가 국내에 들어오자마자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시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시설이 갖춰지자마자 제공자들을 보내기 시작했으니까"

 

"..."

 

사형수와 만다라케의 인과관계는 석환이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갑작스레 재개된 사형은, 정의구현 따위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 눈앞의 괴생물체의 영양공급용일 뿐이었다. 

 

이제 남은 의문점은 단 하나.

 

왜? 

 

도대체 왜? 이 정부에서는 이 만다라케를 키우고 있는 걸까?

 

물론 사람 얼굴이 달린 삼이 세상에 흔한것은 아니다.

그게 심지어 움직이기까지 한다면 더더욱 그렇지. 하지만 그게, 아무리 범죄자라고 한들 사람의 생명까지 갈아 먹여가면서 할만한 이유가 있는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석환은, 자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추리를 선아에게 내민다.

 

"김박사님, 설마 이 만다라케가 이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갈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뭐, 백신의 재료.. 그런 거라도 되는 건가요?"

 

진지하게 질문을 한 석환의 질문에 선아는 그만 빵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아하하핫, 아 미안해요 윤박사님, 아 나 진짜 이건 생각도 못했어"

 

연구실 책상을 탕탕 치며 웃는 선아.

그녀는 몇 번씩 다시 말을 이으려다가도 또 다시 웃음이 터지고 또 그걸 애써 안정시키고를 반복하다 결국 눈에 눈물까지 보이고 만다.

 

그 난리통에 석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당황하고 있을 뿐.

 

"아, 윤박사님, 진짜 미안해요. 아하핫, 아니 정말, 상상력이 대단하셔. 나는 처음에 기껏해야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 이런 생각밖에 못했는데"

 

한동안 열심히 책상을 치다가, 간신히 가슴을 붙들고 말을 이어가는 선아.

차분히 숨을 고르고, 또 심호흡을 한뒤 그녀는 말을 잇는다.

 

"미안하지만 이건 그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 얼굴 달린 만다라케의 효능은 단 하나밖에 없으니까"

 

"네? 그게 뭐죠?"

 

 

  

 

 

 

 

 

 

 

 

 

 

 

 

 

 

 

 

 

"피부 미용이요"

 

"네?"

 

"피부 미용. 매우 매우 뛰어난 효과.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게 사람 목숨 몇개보다 더 중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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