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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옆집 아저씨

by 담쟁이저택 2023. 6. 19.

 

"아! 아파! 아파! 아파!"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6년차 주부 선영은 딸아이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가스레인지의 불을 급히 끄고 거실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

 

여느 때와 같이 바닥에 엎드려 바둥거리는 딸 3살 나현이.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 동생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5살 나훈이.

 

너무나도 많이 봐서 익숙한 장면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선영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 들어갈 뿐이다.

 

"나훈이 너 그만 안 둬!!"

 

분명히 엄마와 눈이 마주쳤지만, 나훈은 멈출 기색이 없다.

 

"너 자꾸 이렇게 나쁜 짓 하고 엄마 말 안 들으면! 옆집 아저씨가 와서 잡아간다고 했지!"

 

뚝.

 

엄마의 협박 아닌 협박에 5살 나훈은 잡았던 동생의 머리채를 놓았다.

 

"엄마아아아아-"

 

오빠가 머리채를 놓자마자 서럽게 울며 달려와 우는 나현.

저항하다가 긁혔는지, 핏방울은 보이지 않지만 뺨에 이마에 시뻘건 줄이 몇 개씩 가있다.

 

"아니, 넌 도대체 오빠가 되가지고 동생을 예뻐해 주지는 못할망정 매일같이 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야! 여자애 얼굴에 상처를 내놓으면 어떻게 해!"

 

열손가락 물어서 안 아플 손가락이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선영은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나훈을 야단치는 것이 더 옳다고 판단했다.

 

"엄마는 맨날 나현이만 예뻐해!!"

 

소리를 빽 지르며 자기 방으로 도망가는 나훈.

 

"너! 이리 안 와? 정말로 너 엄마 말 이렇게 안 들으면 옆집 아저씨가 잡아간다!"

 

멈칫.

나훈은 도망가다가 말고 멈춰 서서 화난 엄마를 보며 우물쭈물한다.

 

옆집 아저씨가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다.

 

...

 

옆집 아저씨.

 

사실은 이름도 성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 남자인지도.

단지 아는 것은 이 사람, 확실히 정상은 아니라는 것.

 

어지간해서는 집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거니와, 가끔 가다가라도 집밖에서 모습을 보일 때는 늘 취한 모습에, 몸은 씻은 것이 언제인지 늘 악취가 고약했다.

 

 

가끔씩은 복도에서 알 수 없는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뱉기도 하는. 그런 미친 사람.. 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남자.

 

 

같은 층을 쓰는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사무실에 항의를 넣어보기도 했지만,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도 이 아파트의 주민이기에, 관리사무실에서 할수 있는 조치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소리만 지르고 욕설만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사실 선영은 옆집 남자를 많이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달에 한번, 또 지지난 달에 한번, 옆집 남자는 술에 잔뜩 취해 집을 잘못 찾아 들었다.

 

정확히는 문고리를 잡고 흔들어대고 문을 쾅쾅 발로 차댔었다.

 

두 번째에는 문이 잠겨있었고, 미리 인터컴으로 확인을 했기에 큰 탈 없이 그냥 관리사무실에 전화하는 것으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첫 번째에는 아무 생각 없이, 남편이 회식이라도 하고 만취해서 돌아온 줄 알고, 급히 문을 열었던 선영은 문이 열리자마자 밀고 들어온 옆집 사내를 쫓아내느라 정말 사력을 다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이들에게 쓰게 된 단어 '옆집 아저씨'

 

마치 선영이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호랑이가 물어간다' 라는 표현을 썼듯이.

그녀는 '옆집 아저씨가 잡아간다' 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딱히 아이들의 교육에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가 그랬던가.

 

미운 세 살.

죽이고 싶은 다섯 살.

 

건설회사에 다니느라 야근과 회식이 잦은 남편 때문에 육아를 거의 독박을 쓰게 된 선영은 고삐가 풀린 두 명의 아이들을 제어하는 것이 힘에 부쳤다.

 

3살 나현은 언제부터인지 매우 떼가 늘었다. 조금이라도 엄마 눈 밖에서 벗어나면 칭얼대고 울기 일쑤였다.

그리고 막 5살이 된 나훈은, 나현을 질투라도 하는 건지, 선영이 조금이라도 나현에게 신경을 쓰는 기미를 보이거나, 예뻐 해주는 모습을 보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현을 괴롭히고는 했다.

 

5살 사내아이와 3살 여자아이.

덩치도 힘도 싸움이 될 리도 없거니와, 매번 얼굴에 생채기가 나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싸움에, 선영은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두 아이들이 너무나도 무서워 하는 사람.

 

옆집 아저씨.

 

"말을 안 들으면 옆집 아저씨가 잡아간다!"

 

 

그 한마디는 두 아이들이 엄마의 말을 즉시 듣게 만들기에 너무나도 효율적이었다.

 

 

그래.. 그렇게.

 

 

선영은 그녀 자신도 무서워 하는 존재를 아이들을 훈육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

 

지난번 아이들이 싸운 뒤로 며칠이나 지났을까.

 

선영은 지난 며칠간 꽤나 순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현이가 칭얼대는 것은 여전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나훈이가 얌전해졌다.

 

동생이 엄마에게 예쁨을 받아도, 혹은 오빠에게 장난을 쳐도.

같이 서로 장난을 치고 놀아줄 뿐, 예전처럼 동생을 괴롭히지도, 엄마에게 대들지도 않았다.

 

아니, 그걸 넘어서 동생을 이뻐해주고 있었다.

 

'지난번 일로 철이라도 든걸까..'

 

내심 기뻐하며 간만에 찾아온 평화를 즐기는 선영.

 

그래, 오늘 저녁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시지 볶음이라도..

 

..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쾅쾅쾅쾅!

 

격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선영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들어 본적이 있는 소리.

 

 

돌아본 인터컴 모니터에는 눈이 풀린 옆집 사내가 비치고 있었다.

 

무...문.. 문이 잠겨 있던가?

선영은 부리나케 뛰어나가 현관문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이다 자물쇠는 잠겨있다.

 

"빌어먹을! 이 썩을 새끼들아! 당장 나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옆집 사내.

선영은 공포에 떨면서도 자물쇠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예비 걸쇠까지 채웠다.

 

쾅 쾅!

 

"어디 남의 집에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거야! 죽고 싶어? 어?"

 

이번에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걸까.

선영은 떨리는 몸을 가누며 경비아저씨를 부르기 위해 인터컴쪽으로 몸을 돌리려는데..

 

쑤욱-

 

우유 넣는 통으로 사내의 손이 들어왔다.

 

"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린 선영.

 

거칠게 우유 넣는 통을 비집고 들어온 사내의 손은..

 

 

하고 한 덩어리의 종이 덩어리를 떨어트려 놓고는 얌전히 밖으로 사라졌다.

 

"어? 어..? 어어어?"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선영.

 

그런 선영을 두고 옆집 사내는 무언가 또 다른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얌전히 문에서 멀어져 갔다.

아니 적어도 또 다행히도 선영에게는 그가 멀어져 가는 것으로 느껴졌다.

 

저벅 저벅.

끼익 끼이이이익 퉁.

 

옆집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선영은 그 자리에 주저 앉은 채 벌벌 떨며 마음을 추스르려 애를 쓰느라 바빴다.

 

이제는 정말 경찰.. 경찰을 불러야 할까.

근데 경찰이 내 말을 믿어 줄까?

 

그러려면 무슨 증거물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선영의 눈앞에 떨어져 있는 이상한 종이 뭉치.

그래, 이게 어쩌면 증거물이 되어줄지도 몰라.

 

평소 같아서는 그 사내의 손에 들려 있었던 물건은 만지고 싶지도 않을 선영이지만.

그녀는 그녀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를 내서 종이 뭉치를 손에 쥐었다.

 

"색..종이?"

 

종이 뭉치의 정체는 구겨진 색종이였다.

여러 장의 색종이를 한 덩이로 뭉쳐서 구겨놨기에, 선영은 조심스레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펼쳐보아야만 했다.

 

"어? 뒤에 뭐가 써있는.."

 

다 펼쳐가는 색종이 뒤 하얀 면에 적힌 글씨. 삐뚤 빼뚤, 마치 취한 사람이 적은 듯한 글씨.

그 모든 색종이들을 다 펼쳐본 선영은 눈 앞이 하얗게 되는 것을 느꼈다.

 

 

 

 

 

 

 

 

 

 

 

 

「아저씨 저는 엽집 나훈이입니다. 동생이 엄마 마를 잘 안드습니다」

 

「오늘 동생이 반찬투정을 해습니다」

 

「저는 엄마 마를 잘드습니다」

 

「아저씨 오늘도 동생이 엄마를 화나게 해습니다」

 

「동생은 나쁭아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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