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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고양이 네로

by 담쟁이저택 2023. 6. 18.

 

여드름 생성기.

안타는 쓰레기.

오겹살 오타쿠.

 

..

 

그래, 자랑은 아니지만 그게 내 별명이다.

아무도 최성현이라는 내 이름은 불러주지 않는다.

 

18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내 기억이 시작되는 유치원 때부터 나는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말 할 것도 없고.

중학교 때는 전학을 한번 갔는데도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당연한 것인 것처럼 반 아이들은 날 피했고.

그 중 잘나가는 놈들은 늘 그렇듯이 나를 찍었다.

 

새 학년이 시작된지 겨우 2주.

 

오늘도 용구 삼인방에게 얻어맞고, 점심값을 뺏겨 주린 배를 움켜쥔 채, 털레 털레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것조차, 최단거리로 가지도 못한다.

 

 

용구 놈들이 숨어있을 까봐.

집에 가는 길은 여기가 아닌데. 혹시나 또 괴롭힘 당할까 봐 이렇게 돌아 돌아 집에 가는 길 .

 

 

정말.. 

죽고 싶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덤프트럭을 보면 저 바퀴 밑에 머리를 깔면 어떠려나..

동네 마트에서 식칼이라도 보일 때면 저걸로 손목을 그으면 아프려나..

 

하루 하루를 그런 생각으로 살아간다.

아니 내가 지금 살아 있는건지 어떤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단 이 놈의 몸뚱아리는 숨을 쉬고 있기에,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최단거리면 10분이면 갈 길을 지금 40분째 걷고 있다.

수분마다 편집증적으로 주위를 살피면서도, 혹시라도 놈들이 마주칠까 두려워, 나는 이렇게 도망아닌 도망을 다닌다.

 

패배자.

도망자.

 

 

나에게 찍힌 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낙인.

 

 

그런 가치 없는 내 삶의 유일한 낙이자. 내 유일한 친구.

 

 

우리집 고양이 네로.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우산을 뺏긴 채 집으로 비를 맞으며 걸어와야 했던 날.

무슨 생각이었는지 평소에는 가지도 않던 길로 접어들었던 내가 본 것은 죽은 큰 어미 고양이와, 그 고양이의 젖을 빨고 있던 네로였다.

 

눈도 제대로 못뜬 녀석이 배가 고팠는지, 필사적으로 죽은 어미의 젖을 무는 게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던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녀석을 집에 데려와 더운물로 씻기고, 우유를 먹이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고양이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던 내가, 그런 멋대로의 처치로 새끼 고양이를 살린 건 참 기적 같은 일이었더라.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이제 곧 2년이 되어간다.

 

그렇게 네로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큰 길에서 골목으로, 그리고 거기서 더 작은 골목으로 돌아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반지하방.

그 곳이 나의 집이고, 또 그녀.. 네로의 집이다.

 

현관앞 화문 밑에서 열쇠를 꺼내 집 문을 연다. 학교에 열쇠를 가지고 갔다가, 혹여나 뺏겨버리면, 밤 늦게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집에 들어갈수가 

없으니 생각해낸 일종의 대피책.

 

끼이익, 철문이 긁히며 기분 나쁜 소리를 낸다.

 

"네로야, 나 왔어"

 

사실 말을 할 필요도 없다.

내 발걸음을 알아듣는 네로는 문이 열리기도 전에 현관 앞에서 날 올려보며 날 맞이해 주니까.

 

안 그래도 어두운 반 지하 방은, 유일하게 하나 있는 작은 창문너머로 새어 들어오는 불빛 이외에는 자연채광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어두운 그곳.

 

그리고 거기에서 더욱 더 돋보이는 상냥한 눈동자 두개.

 

'냐아아옹'

 

딸랑 딸랑.

 

응 그래 나 왔어. 왔어.

오늘도 나 많이 힘들었어.

 

그래도 나 왔어.

잘 있었어?

 

고양이들은 보통 주인이라도 낯을 많이 가린다던데.

네로는 그런것이 전혀 없는 소위 말하는 개냥이다.

 

수천번은 왔다갔다 했을 내 다리사이를 오늘도 왕복하고, 자기의 얼굴을 비벼댄다.

작년 처음 만난지 1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선물해 준 목걸이에 달린 방울에서 딸랑 딸랑 소리가 난다.

 

참 듣기 좋은 소리다.

날 괴롭히러 찾아오는 용구놈들의 발소리와는 전혀 다른, 작은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나는 딸랑 딸랑 방울소리.

 

이 조그만 복슬복슬거림이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네로는 알까.

 

그렇게 가방을 내려놓고 교복을 벗는 찰나.

핸드폰이 울린다.

 

용구놈 때문에 금이 잔뜩 가버린 액정이지만, 그래도 누가 걸었는지 정도는 간신히 알아볼수 있다.

이건 아마도 발신자 표시제한.

 

안 받고싶다.

 

애초에 나한테 중요한 전화가 걸려올 리도 없지만, 지난번에 발신자 표시제한 전화는 용구놈이 건거였다.

깜짝 놀라 끊어버리고 전원을 꺼버린 나에게 다음날 찾아온 건 걸레 빤 물.

 

받고 싶지 않다.

정말로 받고 싶지 않다.

 

「왜 안받아?」

 

화들짝

손에 든 핸드폰을 떨어트린다.

 

뭐.. 뭐야? 이 목소리는?

분명히 들었다. 맑은 여자의 목소리.

 

 

주위를 둘러보지만 당연하게도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왜 안 받냐구」

 

또 다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

 

놀라서 정신을 못차리는 나에게 네로는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 그리고 나서야 눈치를 챈다. 이 목소리는..

 

「또 용구일까봐 그래? 오늘도 많이 괴롭힘 당했어?」

 

네로에게서 들려오고 있었다.

 

뭐,뭐야?

뭐가 어떻게 된거야?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네로.

분명히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인걸 알면서도, 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네..네로니?"

 

네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쩍 열고 하품을 한다.

 

「그럼 나지 누구겠어. 여기 나말고 누가 또 있어?」

 

네로다.

분명히 이 목소리는 네로에게서 난다.

 

"너.. 어,어떻게 말하는거야?"

 

네로는 멀뚱멀뚱히 나를 바라본다.

분명히 그녀의 입은 앙 다물고 있는데, 네로는 분명히 들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네 마음에 대고 말하는거야, 너 밖에 들리지 않아. 내 목소리는」

 

"말도 안돼"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몸에는 아직도 닭살이 돋아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로는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와 풀려가는 내 다리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며 말을 잇는다.

 

「너무 걱정 하지마, 내일은 그 녀석들이 널 괴롭히지 않을거야」

 

"무, 무슨소리야 그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난 알아, 왜냐면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용구는 내일부터는 네 얼굴만 보면 무서워하면서 도망다닐거야. 현석이도, 재우도. 이제는 더 이상 널 괴롭히지 못할거야」

 

용구, 현석, 재우.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세사람.

 

내 학교 생활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세놈.

물론 네로 앞에서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그 세놈 때문에 죽고 싶다고 한풀이한게 한두번은 아니었지만, 이건 정말로 상상도 못하는 전개였다.

 

다리사이의 그녀를 천천히 팔에 안아들고 묻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자세한건 알 필요 없어. 내가 다 알아서 했으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말고 오늘밤은 푹 자」

 

시크하게 고개를 돌리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일러주는 네로.

그 푹 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날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찾아온 다음날.

 

"저.. 정말이었어. 네로야"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미친 듯이 집으로 달려온 나는 화분을 던지듯이 밀어제치고 열쇠를 꺼내, 문을 열어 날 기다리던 네로를 품에 안아들고 말한다.

 

숨이 찬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폐를 쥐어짜듯 네로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한다.

 

"용구새끼도, 현석이 새끼도, 물론 재우 그 새끼도.. 오늘 이상하게 나랑 눈 한번 못마주쳤어. 정말로 뭔가 날 무서워하는 거 같았어 이거 네가 해준거 맞지?"

 

신난다.

신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럼 내가 했지 누가 했겠어」

 

 

여전히 시크한 목소리의 네로.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나는 네로를 내려놓고 큰 절을 올린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로는 그저 무심하게 나를 바라볼 뿐.

 

「걱정하지마, 내일도 또 모레도, 그 애들이 너한테 손끝 하나 못 대게 해줄게」

 

그렇게 말하는 네로의 입은 꽉 다물려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놀라우리만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도.. 너한테는」

 

---

 

또 다음날 방과후.

 

최근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집으로 오는 최단거리를, 너무나도 여유로운 속도로 걸어 온 나는,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집 문을 연다.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는건 나의 영웅.

아니 이제는 정말로 나의 연인이나 다름없는 네로.

 

"네로야아아"

 

나는 신발을 벗는 것도 잊어버린 채 네로를 안아 든다.

 

"너무 고마워, 오늘도 어제랑 똑같았어, 그 세놈이 나랑 눈도 못 마주쳐, 도대체 무슨 일을 해준거야? 말 해주면 안돼?"

 

「그건 안돼, 너는 모르는게 더 좋아」

 

귀찮다는 듯 내 품에서 도망치려 발버둥 치며 말하는 네로.

 

"그렇지만 정말로 궁금하단 말이야. 알려주면 안될까?"

 

「왜 그렇게 알고 싶어 하는거야?」

 

결국 바둥거려 내 품 안에서 벗어나 바닥으로 뛰어 내리는 네로.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나는 말을 잇는다.

 

일주일 전만 같았어도 꿈에도 꾸지 못할 말.

아니 꿈은 꾸었지만 내뱉지는 못했던 말.

 

"그 쓰레기 같은 세놈들 벌을 주고 싶어서"

 

「뭐?」

 

"맨날 나 괴롭히고, 돈 뺏고, 가방에 쓰레기 버리고, 걸레 빤 물 뒤집어 씌우고, 갚아 주고 싶어서"

 

그래, 갚아주고 싶다.

 

「...」

 

지난 억울했던 세월이 떠올라 눈에 눈물이 차 오른다.

 

"내가 예전에 말했잖아, 정말로 그 세놈, 죽여버릴 수만 있으면 죽여버리고 싶다고. 내가 당한거 백배 천배.."

 

어느새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그 때.

 

「푸하하핫」

「우핫」

「꺄하핫」

 

 

갑자기 네로가 이상한 소리로 웃는다. 

 

 

어?

 

「아 진짜 더 이상은 웃겨서 못하겠다 미친새끼」

「이 오겹살새끼 진짜 돌았나봐」

 

이건..

네로 목소리가 아니다.

 

이건 용구..랑 재우 목소리?

 

네로는 여전히 차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

 

「야 돼지, 창문 열어」

 

네로가 현석의 목소리로 말한다.

쿵쿵. 누군가가 발로 차는 소리와 함께 반지하 방의 창문이 덜컹 거린다.

 

 

「열라고 병신아, 깨버리기 전에」

 

네로와 창문을 번갈아 본다.

창문 밖에 아른거리는 사람의 그림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열..

..자 마자 얼굴에 무슨 액체가 쏟아진다.

 

"코..콜라?"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건 재수없는 표정의 내 원수들.

용구, 현석, 재우.. 그리고 처음 보는 화장이 짙은 여고생.

 

그녀는 나를 보고 배시시 웃으며 한 손으로는 손가락들을 까딱거려 인사하고 남은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 비슷하게 생긴 물건에 대고 말한다.

 

"안녕?"

「안녕?」

 

창문 너머와 네로에게서 동시에 들려오는 네로의 목소리.

 

나는 떨리는 손으로 네로를 찬찬히 훑어본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네로의 몸에는 어떤 수상한 것도 없다. 물론 내가 1년전에 선물해준 목걸이와 방울..뒤에 이 검은 스피커 같은건 뭐지?

 

다리가 풀린다.

나도 모르는새 주저 않는다.

 

"이 찐따 새끼가 잠깐 장난 좀 쳤더니 주제 파악도 못하고"

 

 

"씨발 평소에는 맨날 어디 빙빙 돌아가더니 어제는 돼지주제에 존나 빨리 뛰어가는 바람에 자전거 훔쳐탔어야 됐잖아"

 

 

"병신이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열쇠를 화분 아래다가 숨겨놓냐?"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이름도 모르는 창문 밖의 그녀가 웃는다.

네로도 따라 웃는다.

 

어느새 내 품에서 벗어난 네로는 어제와 또 그제와 마찬가지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느새 무전기를 빼앗아 든 용구가 무전기에 대고 말한다.

 

 

"야, 병신아, 고양이가 말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야, 병신아, 고양이가 말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

  

"내일 학교에서 보자"

「 내일 학교에서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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