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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내 아이의 아버지

by 담쟁이저택 2023. 6. 18.

 

"우와, 딱지야, 아빠 나온다, 자아-, 아빠 나온다. 우와- 알아 보겠어? 아빠야 아빠"

 

아직은 부풀어 오르지도 않은 배를 쓰다듬는 선영.

이제야 막 임신 10주차에 들어간 그녀는 자신의 취미 겸 태교 겸 거실 한구석을 채운 80인치 티비에 석훈이 나오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있었다.

 

 

이름 박석훈.

 

 

아역 출신 연예인.

어렸을 때부터 한결같은 연기력과, 정변의 예시라고 할만큼, 나날이 증가해가는 남성적인 매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놓지 않는 배우였다.

 

어찌 말하자면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단 한번도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배우였던 만큼, 그의 사생활은 더 더욱이 비밀로 부쳐지고 있었는데..

그랬던 그가 어떤 의미에서는 엄청난 정보를 자의로 대중에 흘린 것이 어느새 1년이 지난 듯 했다.

 

그것은 바로 불임 아니 요즘 말로는 난임.

 

결혼을 한지 약 3년이 지났음에도 2세가 없었던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왜 2세를 계획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던 아침 생방송 토크쇼 진행자는 허울 없이, 숨김없이 토해나는 석훈의 진실에 정말 식은땀을 흘려야 했었다.

 

"작년이 아무래도 고비였지.."

 

어찌 보면 대답할 의무가 없는 질문 이었지만, 석훈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상황을 대중에 공개했다.

 

'자신도, 아내도, 열심히 아이를 가지려고 계획 중이고 또 시행을 했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의학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방송이라고 해도 방송은 방송.

그렇게 전 국민을 상대로 난임을 선언한 석훈 부부가 강남의 한 유명 난임 병원을 찾기까지는 반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었다.

 

검사 결과는 남자와 여자, 둘 다 정상. 바꿔 말하면 난임의 원인은 불명.

 

단순한 정자 검사만으로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온 석훈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해야 하는 검사도, 또 그 변수에 대한 책임도 져야만 하는 아내의 입장으로써는, 단순히 양쪽 다 '정상' 이라는 말이 결코 기쁘게만 다가오지 않았던 듯, 다스패취에서는 말싸움을 하는 석훈 부부의 사진을 찍어, 그날의 1면으로 삼았던 적도 있었다.

 

제목은 '시험관 안의 석훈 2세'

 

시험관 아기가 죄도 아닐 텐데.

마치 무언가 불완전한 사람들이 완전을 꿈꾼다는 느낌으로 작성된 그 기사는 석훈의 가슴에 결코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기고, 또 모든 매스컴의 기사가 그렇듯이, 대중에게서 잊혀졌다.

 

그래서였을까.

 

선영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안 좋은 사태에 대비하는 느낌으로 자신의 아이에게

'껌딱지' 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르는 안 좋은 사태에 대비해서, 잘 붙어 있으라고, 착 잘 달라 붙어있으라고..

처음에는 조금 거부감이 있었던 태명이었지만, 임신 초반에 두어 번 하혈을 경험했던 선영은 이제 와서야 그 태명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벌써 임신 10주차.

아무래도 다들 적어도 16주는 되어야 안심을 할 수 있다는 말에, 그녀는 지금까지 그녀 부모에게도, 어떤 매스컴에도 임신 사실을 알린 적이 없었다.

 

16주..

 

이미 옛날 옛적부터 간지러웠던 입을 생각하면 6주를 더 참는 것은 필요 이상의 고통인듯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생각했을 때, 그녀는 차분히 참는 쪽을 택했다.

 

지금 석훈의 입지를 생각해 봤을 때, 그녀의 임신 사실은 충분히 이슈를 불러 올 테고..

 

지금은 마음을 곧추 잡았다 한들, 만에 하나라도, 필요이상의 관심이 불러온 스트레스가 되었던, 혹은 다른 무언가가 되었던, 이 아이를 잃어버리는 것 만큼은 피하고 싶은 것이 선영의 마음이었다.

 

"그래.. 기다리자.. 대충 안정적이라고 하는 16주가 아니라 20주.. 그래 20주가 될 때까지는 차분히 기다려 보자. 그 대신에 20주가 넘어가면. 의사 선생님이 이제는 정말로 빼도 박도 못할 만큼 안정적이라고 하는 20주가 되면, 기자회견을 하던 뭘 하던 대중에 공개를 하자"

 

자기 자신에게 약속하듯 중얼거리는 선영.

앙 다문 입술과, 꽉 쥔 손에서 그녀의 각오를 읽을 수 있는 듯 했다.

 

 

##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유명 불임 클리닉에 근무했던 간호사가, 자신이 유명배우 박석훈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주장하고 나서 큰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간호사는 그 임신이, 두 사람의 애정행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난임 치료 가운데 있었던 박석훈의 정자 샘플과 미리 냉동시켜 놓았던 자신의 난자를 이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 논란이 더 심해질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그 간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그녀는 임신 20주 차에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있는 박우진 특파원 연결해보겠습니다.

박우진 특파원, 현장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

 

 

네 현장에 나와있는 박우진 기자 입니다.

현재 제가 나와있는 강남 삐이이이- 병원에서는

병원장을 비롯하여, 모든 의사들이 해당 범죄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정보, 즉 정자 샘플을 포함한 생물학적 샘플은, 해당 부서 연구원 혹은 의사가 아니고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다는 게 병원 측 입장인데요.

설령 샘플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해도, 해당 샘플의 배양과 주입에 대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결코 제대로 된 처치를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 항변입니다.

 

다만, 실제로 병원에서 있는 의학적 처치가, 의사의 감독하에, 간호사에 의해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실제로 논란의 간호사가 특정 샘플에 접근을 할 수 있었는지와, 또 그녀의 난자 샘플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여부가 이 논란의 중점이 될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 의문점과는 별개로, 현재 인터넷에서는 격한 토론이 오가고 있는데요.

 

과연 그 간호사가 정말로 박석훈의 정자 샘플을 이용해서 임신에 성공을 했는가. 아니면 단순히 대중의 관심이 고픈 정신병자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하면 임신을 했을 경우 강제로 낙태를 시키는 게 옳은가 아니면 태어날 아이에게는 죄가 없는가.

태아의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만약 박석훈의 아이가 맞다면 친권의 소유는 누가 가지게 되는가.

 

그렇게 대중이 결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토론을 계속하는 가운데, 실제로 시험관 아기를 가지려고 시도했던 박석훈 김다혜 부부의 시험관 시술 1차시도가 실패로 끝났음이 알려지며,

 

더욱 더 이 사건에 대한 혼란과 안타까움이 가중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까지 사상초유의 유전자 절도 현장에서, KBC뉴스 박우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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