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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쓰다

by 담쟁이저택 2023. 6. 18.

 

서울시 노원구 어딘가의 곱창집.

 

말쑥하게 차려 입은 옷차림의 두 중년 남성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직은 조금 이른 저녁이지만, 가게 안은 어느새 제법 사람이 차 있다.

 

"이야- 어떻게 여기는 변한 게 하나도 없냐"

 

"그러게 5년 전이랑 전혀 차이가 없네"

 

향수가 묻어나는 감탄사를 내뱉은 두 사람.

스스로 알아서 자리를 잡아 앉고, 벽에 걸린 목제 메뉴판에 눈길을 가져간다.

 

"가격은.. 역시나 제법 올랐네"

 

가격표를 보며 피식- 하고 웃어넘기는 이 남자의 이름은 형식. 

20년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세계 제일의 저널리스트를 꿈꾸던 남자였지만 지금은 국내에 제법 알아줄만한 신문사에서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뭐, 안 그랬으면 이런 규모 가게가 어디 남아났겠어?"

 

형식의 말을 받아주며 입고 온 코트를 벗어 곱게 접어 옆자리에 내려놓은 이 남자의 이름은 영우.

형식과 마찬가지로 20년전에는 온 세계의 유행을 이끌어가는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지금은 국내 대기업에 아동복 디자인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둘 다, 성공했다면 성공했고, 또 현실과 타협했다면 타협했다고 할만한 큰 꿈과, 나쁘지 않은 현실을 함께 품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대학교로 진학해서도 서로 연락을 놓지 않았지만, 

 

일에 치이고, 가정에 바빠, 늘 핸드폰으로 문자 정도만 주고받다가 근 5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어느새 밑반찬도 깔리기 전에 소주를 한병을 다 비우고 있었다.

 

영우가 묻는다.

 

"그래, 제수씨는 잘 지내고?"

 

"제수씨라니, 이 자식이 형수님이겠지. 자알- 지내신다. 어찌나 잘 지내시는지 요새는 얼굴 보기도 바빠"

 

"뭐 하길래?"

 

"크크, 그냥 뭐 이제서야 애들 어느 정도 다 키워놓고, 자기 하고 싶은 일 찾는 중인거지, 뭐 요새는 사진도 배우러 다니고, 바쁘다 바빠"

 

손사래를 치는 형식의 반응에, 영우는 웃으며 빈 술잔을 채운다.

가끔씩 연락은 했다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인데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렇게 안주로 시킨 곱창전골이 나오고.

지난 5년의 세월을 조미료로,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한잔.

두잔.

 

끊임 없이 들이켰다.

 

그렇게 어느새 얼큰하게 취한 두 사람은 대화가 끊긴 시점에 자연스럽게 벽에 걸린 티비에 시선을 옮겼다.

 

현재 나오는 방송은 9시 뉴스.

지방 어디 판자촌에 살던 80대 노모가 생활고에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던 50대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두 모자가 살던 동네, 그리고 집.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다지만, 아무리 흘끗 쳐다봐도, 그 생활환경이 열악했음은 너무나도 확연했다.

 

 

"후우.. 참.. 세상이 쉽지가 않다. 그치?"

 

 

영우의 한숨 섞인 말에 형식의 표정이 조금 비틀어 진다.

 

 

"어? 너 왜 그래?"

 

"아니, 그냥 저 동네, 내가 아는 동네라서"

 

"음?"

 

형식은 눈앞에 놓인 꽉 찬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고 말을 잇는다.

 

"내가 예전에.. 대충 한 15년쯤 전에, 저 동네에 연쇄살인사건이 있었거든"

 

형식은 입안이 쓴지 어느새 거의 텅텅 비다시피 한 전골 냄비 그릇을 숟가락으로 긁어 입안에 넣는다.

딱히 씹히는 것도 없이, 눌러 붙은 소스만 긁어먹은 탓에 형식의 표정이 딱히 좋지는 않다.

 

"근데, 그게 피해자들이 죄다 노인들이었단 말이야, 최연소 피해자가 나이가 60대 후반이었나.. 중반이었나"

 

"뭐야, 그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조금은 무섭게 시작하는 이야기에 영우는 형식의 빈 술잔을 채워주며 귀를 기울인다.

 

"네 눈에 저 동네가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정말 저 정도가 아니었어. 진짜로, 아니 지인짜로 판자촌이었단 말이지"

 

진짜 판자촌과 그냥 판자촌이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영우는 그냥 지금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쪽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근데, 노인네들 인구수가 되게 많았어. 뭐랄까 절대 인구수라기보다는 그냥 한집 건너 한집에는 환갑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뭐 그런 느낌?"

 

"그래서?"

 

"근데 어느 날, 동네에 마실 나간 할아버지 한 명이 실종이 된거야. 그리고 며칠 뒤에 목에 기-일다란 칼자국이 나서 죽은 시체로 발견이 된거지. 그때는 시대도 시대지만, 경찰들도 처음에는 제대로 신경도 안썼단 말이야. 막 이거 동네사람들 사이에 술먹고 시비 붙은 거 아니냐, 막 이렇게 몰아가면서"

 

"..."

 

"근데 문제는.. 이게 또 며칠 뒤에 한명. 또 한명.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죽어나갔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정말로 경찰에서도 뭔가 잘못되고 있구나.. 라고 제대로 조사하기 시작하고. 뭐 나도 취재차 방문하고.. 뭐 그렇게 된거지"

 

"범인은? 범인은 잡혔어?"

 

영우의 질문에 형식은 영우가 막 채워준 술잔을 다시 입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 조금 더 신경질적으로 냄비 바닥을 긁어 들어간다.

 

"잡혔지.. 잡혔어. 거의 일년 뒤에. 열 다섯명을 다 채워갈 즈음에 간신히 잡혔지.."

 

"뭐야? 누구였는데?"

 

궁금함이 가득한 영우의 살짝은 취한 눈을 바라보며 형식은 짖궂게 웃었다.

 

"맞춰봐라."

 

"뭐?"

 

"누구였을거 같냐? 저 지지리도 가난한 동네에, 먹고 살거라고는 정말 찾아보려고 해도 없는 저 동네에 불쌍한 노인네들 죽이고 다닌 미친 살인마가"

 

"글쎄.."

 

영우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답을 했다.

 

"동네 사는 조금은 젊은 사람 아니었을까? 사실은 원래 부양이 부담되는 자기 부모만 죽이려고 했는데 그게 티가 날까봐 막 다들 싸잡아서 죽여버린?"

 

"크크.. 시나리오 쓰고 있네 미친놈이"

 

"뭐야, 그럼 누군데?"

 

비웃는듯한 형식의 반응에 영우는 조금은 빈정이 상했다.

영우가 형식에게 답을 재촉하자, 형식은 스스로 자기 빈 술잔을 채우고는 입에 털어 넣고는 말을 이었다.

 

"외부에서 온 보험 판매사"

 

"뭐?"

 

형식의 답은 정말로 예상외였다. 보험 판매사? 갑자기 왜?

 

"갑자기 왠 보험 판매사?"

 

"그.. 뭐냐 요새 광고에도 가끔씩 나오더만 그.. 꼭 생명보험이라는게 젊고 건강한 사람만 들 수 있는 건 아니거든, 한달에 내는 납입금이 세서 그렇지 뭐 어찌저찌 조건만 맞추면 나이 먹은 사람들도 어떻게던 들수 있는 상품이라는게 있는 모양이더라고"

 

"..."

 

"그 신박한 보험 판매사가 자기가 스스로 사람들 죽이고 다니면서 그 동네에 사람들한테 그 보험 가입하라고 한거 아니겠냐. 근데 그게 효과가 제법 있었는지, 그 미친새끼.. 체포되기 전 달에는 이 달의 보험왕인가 뭔가까지 해먹었다고 하더라고?"

 

"맙소사.. 설마 그 가난한 노인들한테, 자기 자식들한테 부담되기 싫으면 그 보험 가입하고 자기 손에 죽어라.. 뭐 이런거 한거야?"

 

"이건 뭔 헛소리를 하고 있어, 취했냐?"

 

아무리 봐도 더 취한 쪽은 형식이었지만, 영우는 굳이 반론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한잔 더 자작해서 들이키는 형식을 말리지도 않았다.

 

"딱히 사람을 지정해서 죽이고 다니지는 않았어. 정말로 무작위, 피해자들간에 연관도 없고, 원한관계도 없고, 실제로 죽은 사람 중에 보험에 가입 된 사람도 있고, 또 없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수사가 그렇게 힘이 들었지"

 

"아니, 그럼 뭐야. 그럼 그 노인들이 왜 그런 보험에 가입을 해? 납입금도 비싸다며?"

 

"아니 그러니까아, 너는 지금 그 생각 자체가 틀려먹었다고오!"

 

식탁을 주먹으로 탕! 치는 형식.

 

그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형식과 영우의 테이블로 모인다.

상대적으로 덜 취한 영우는 주위 사람들에게 목례로 사과를 했지만, 형식은 그런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듯 하다.

 

이제는 취해서 꼬여가는 발음으로 대답하는 형식.

 

"그 보험은, 그 노인네들 자식들이 가입한거야"

 

"뭐?"

 

"딱히 청부살인.. 뭐 그런건 아니고, 그냥 동네에 노인네들이 픽픽 쓰러져 죽으니까.. 일종의 복권 같은 느낌으로"

 

영우는 할말을 잊어버렸다.

 

"실제로 당첨된 놈도 있고.. 꽝인 놈도 있었지만.. 그런.. 복권이었던 거지. 자기 평생 길러준 부모 목숨 가지고.."

 

이미 만취해버린 형식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은듯 기댄듯 앉아 풀린 눈으로 입을 닫았다.

딱히 조용한 식당안은 아니었지만, 신나게 목청을 높히던 놈이 입을 닫아버리자, 영우는 순간 고요함이 찾아왔다 느꼈다.

 

 

그렇게 잠시 앉아있던 영우는 반쯤 찬 자신의 소주잔을 입에 털어 부었다.

 

 

"...쓰다"

 

 

오늘 마셨던 모든 술 중에서, 방금 마신 잔이 제일로 쓴 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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