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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선생님, 도대체 왜..

by 담쟁이저택 2023. 6. 18.

 

눈을 뜨셨네요.

 

많이 불편하시죠?

어제 과음 하셨으니 그러실 만도 하시겠죠.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리고 너무 바둥거리지 마세요. 선생님 손발 묶어놓은 거 케이블 타이라고, 선 정리 할 때 쓰는 건데 

아둥바둥거린다고 끊어질 물건이 아니니까요.

 

..

 

제가 왜 이러는지 궁금하세요?

 

글쎄요.

정말 어디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저는요.

저는 정말로 선생님이 좋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없어서 그랬나, 정말로 선생님은 그냥 이웃에 사는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정말로 아빠 같았어요.

제가 졸업식에 다들 아빠 오는데 나만 아빠 안 온다고 안 간다고 떼쓰니까 대신 와주시기도 하고.

 

엄마 몰래 뒤에서 용돈도 조금씩 주시고.

 

다 자라서도 몸 걱정 된다고 엄마도 저도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공짜로 해주시고.

저는 정말로 선생님이 너무 아빠 같고 좋았어요.

 

근데 제가 왜 이러냐구요?

 

재작년 이 맘 때 였던가요. 제가 처음으로 사회생활 시작한 때가?

 

연봉은 나쁘지 않았지만, 정말 개인시간이라고는 죽을 끓여먹으려고 찾아봐도 없더라구요.

남들 다 하는 연애 한번 못해보고..

 

처음 겪는 종류의 스트레스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맨날 속은 쓰리고.

 

그래서 진찰 받아보려고 왔을 때.. 그때 선생님이 처음으로 수면 내시경을 해 주셨죠.

그리고 그때 작은 궤양을 발견하셨다면서요.

 

저한테 그때 분명히 그러셨죠. 이거 그냥 작은 궤양이라고. 단순한 내과적 약물 치료만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약 처방해 줄 테니까, 적어도 3개월 마다 와서 수면 내시경 검사 받으라고.

 

..

 

그 말을 믿는 게 아니었어요.

정말로 바로 그때 대학병원 아니 조금 더 큰 병원이라도 가봤어야 했어요.

 

그랬으면 지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얼마 전에요, 회사에서 직원복지차원에서 건강검진을 시켜줬어요.

 

근데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결과가 나오더라구요.

선생님은 이게 단순한 위궤양이라고 하셨죠.

 

..

 

아, 대답이 듣고 싶으니까 재갈은 빼 드릴게요.

 

 

 

 

 

 

 

 

 

그럼 말씀해 보세요.

 

왜 지금 제가 손에 들고 있는 임신테스트기가 두 줄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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