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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대마법사

by 담쟁이저택 2023. 6. 19.

남자가 50살이 되도록 동정이면 대마법사가 된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한낮 우스갯소리.

하지만 그 이야기가 실제가 되리라고 과연 누가 생각을 했을까.

 

한달 전 만 50세가 된 동정남 김용찬,

학창시절부터 단체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중학교를 자퇴하고, 은둔형 외톨이로 근 30년을 살아왔다.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고는 저주와 증오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그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어마어마한 마력.

 

그런 그가 선택한 첫 마법은,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보았을 만한 운석 소환.

소위 말하는 메테오였다.

 

처음 자신의 SNS에 자신이 운석을 소환하고 있다고 울렸던 그의 포스팅에 관심을 기울였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달의 절반만한 크기의 운석이 지구의 공전 궤도에 직교하는 각도로 돌진하고 있다는 나사의 발표가 있고 나서부터, 그의 포스팅은 소위 말하는 성지가 되었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중력장을 무시하는 직진을 하고 있는, 명실공히 외력의 간섭을 받고 있는 운석.

 

용찬은 그 운석의 궤도를 자신이 지정한 시간에 지정한 각도로 살짝 비틀어 봄으로써 그 외력의 주인이 자신임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

 

현재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SNS의 포스팅은 단 한 줄.

 

‘세계 멸망 D-3’

 

 

##

 

 

네, 현장에 나와있는 박우진 기자입니다.

 

지금 부산 서면에 있는 김용찬씨 집 앞에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그를 비난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에게 자비를 청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용찬씨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옥탑방은,

현재 알 수 없는 빛의 장막으로 둘러 쌓여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물리적인 접촉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현재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는 데까지 예상시간이 약 하루하고 반나절이 남은 상황, 이곳에서는 사람들의 원망과 절망만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마음을 바꾸어 줄 것인지, 이 지구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지,

아무것도 확실시 되지 않은 가운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습니다.

 

엇! 지금 뭐가 번쩍 하고 아아앗! 여러분! 용찬씨의 메시지가 하늘에 떠 올랐습니다.

 

 

##

 

 

세상사람들의 이목이 용찬의 옥탑방에 몰린 가운데, 서면 하늘에 붉은 빛의 글자가 떠올랐다.

 

「천유라를 안고 싶다」

 

운석 충돌을 이틀도 채 안 남겨놓은 상황에서 던져진 그의 메시지는, 대한민국을, 전 세계를 다시 한번 더 혼란케 만들었다.

 

천유라.

본명 이옥련.

 

실력파 아이돌 출신으로, 이제 막 성인이 된 한창 꽃피우는 미모와 인기를 안고 있는 여자 연예인.

 

그녀를 안고 싶다는 용찬의 메시지는 세상에 나온 지 수초 지나지 않아 SNS를 통해 빛의 속도로 퍼져나갔다.

 

SNS 「저 미친 또라이 마법사, 저거 진짜 진심으로 한 말임? 」

SNS 「저 안는다는 표현이 씨발 포옹은 아닐 거잖아, 용찬이 새끼 사진 봤음? 완전히 얼굴 강판에 갈았던데」

SNS 「천유라는 갑자기 왠 뜬금포?」

 

이미 전 세계의 적이 된 용찬에게 각종 비난이 쇄도 하는 가운데.

세상 사람들은 한가지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가 대마법사가 된 이유.

 

SNS 「잠깐만, 저 새끼 저거 총각 딱지 떼면 마력 잃어 버리는 거 아님? 」

SNS 「어? 진짜? 그러고 보니 그거 맞는 말인데? 」

SNS 「헐 대박」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우쳐감에 따라, 인생에서 최악의 위기를 맞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지정된 대상,

 

천유라 본인.

 

더군다나 용찬의 메시지가 남겨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사에서 만약 운석이 현재의 궤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12시간 안에 외력의 작용이 없어진다면,

외부의 중력장의 영향에 의해 아슬아슬한 궤도로 지구를 스쳐 지나갈 것이라는 발표를 한 후로, 그녀의 집 앞은 용찬의 그것과 비등할 정도의 인원이 모여 그녀의 결심을 촉구하고 있었다.

 

“천유라씨, 부탁해요, 제발 우리를 살려주세요!”

“눈 한번만 딱 감고! 제발! 어차피 지구가 멸망하면 천유라씨도 없잖아요!”

 

사람들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

 

용찬이 가지고 있는 빛의 장막 같은 방어막조차 없는 그녀의 단독주택은, 이미 외부인들에게서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들이 그녀 스스로 자발적인 행동을 해주기를 권하지만, 만약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난다면 어찌 돌변할지 알 수가 없는 상황.

이 비운의 주인공 천유라는 집안에서 무릎을 감싸 안고 주저 앉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떨리는 그녀의 손에 쥐여진 것은 그녀의 핸드폰.

 

그녀가 애써 풀려 가는 정신줄을 잡으며 확인한 용찬의 SNS는 그녀를 더욱 더 절망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안에는 추하게 늙어간 그의 외모와 천유라 자신을 향한 삐뚤어진 애정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었으니까.

 

“에이씨! 천유라 나와! 너 아니면 우리 모두 죽는다고!”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남자한테 한번 안긴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

“살인자 같은 년!”

 

시간이 가면 갈수록 거칠어지는 군중들.

그들의 언어가 눈물이 섞인 애원에서, 입에 담기도 거북한 욕설이 섞인 협박이 되기까지는 세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의 집 거실 창문을 깨고 소화기가 날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자신에게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하는 천유라.

그녀는 겹겹이 잠궈놨던 현관의 자물쇠를 풀고 문고리를 돌렸다.

 

“천유라가 집에서 나왔다!”

“만세! 우리는 살았다!”

“모두들 길을 비켜!”

 

성서에 기록된 모세의 기적이 이러했을까.

 

그녀는 자신을 가로막은, 콘서트 장에서도 보지 못했던 인파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물러나 탁 트인 한줄기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을 보며

이미 울다 지쳐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샘이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

 

네 현장에 나와있는 박우진 기자입니다.

 

지금 막 천유라씨가 용찬씨의 집 앞에 도착했는데요.

 

발 디딜 틈도 없는 이 사람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 길을 비켜주는 속도는 가히 밀려왔던 썰물이 빠져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지금 그녀는 제 앞을 지나 한걸음 한걸음 용찬씨의 옥탑방으로 향하고 있는데요.

 

과연 천유라씨는 지금까지 경찰특공대도 들어가지 못했던 이 빛의 벽을 넘고 용찬씨의 방에 들어갈 수 있을-

 

아앗- 빛이 열렸습니다! 총알도 뚫지 못했던 빛의 장막이 열렸습니다!

 

천유라씨가 빛의 장막을 넘어 용찬씨의 방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천유라씨의 뒷모습은 빛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가운데, 현장에서는-

 

 

##

 

 

 

13분 12초.

천유라가 용찬의 방안에 발을 들인 시점부터, 그의 옥탑방을 둘러싼 빛의 장막이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

 

22초.

빛의 장막이 사라진 시점부터, 경찰특공대가 용찬의 방에 들이닥쳐 알몸의 그를 방 밖으로 끌어내는 데까지 걸린 시간.

 

42분 49초.

용찬이 방 밖으로 끌려 나온 시점부터, 나사에서 지구를 향하던 운석의 궤도가 틀어져, 충돌의 위험이 없어졌다고 발표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

 

그렇게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인류는 세계 멸망이라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 세계 인구의 목숨을 담보로 잡은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도대체 무슨 법으로 어떻게 처벌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범죄자와,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결국 사건의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얼마 뒤 자살을 택한 젊은 여자 연예인과.

그 죽음을 방관 혹은 종용한 이들을 남긴 채, 사건으로부터 반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세간의 화제로 남아있었다.

 

 

##

 

 

이곳은 KBC 9시 뉴스 생방송 촬영현장.

이병욱 서울대 법학과 교수 외 수명의 각분야 전문가들이 게스트로 초대된 가운데, 그 중 두 명의 패널은 각 주제마다 서로를 잡아 먹을듯한 격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경우, 고(故)천유라씨를 협박하듯이 하여 그녀의 집 밖으로 몰아낸 군중들이 과연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 마느냐가 굉장히 이슈인데요,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9시 뉴스 고정, 백서윤 아나운서의 질문에 큼큼- 하며 목을 가다듬은 뒤 말문을 여는 이병욱 교수.

 

“에, 이것이 사실 참 어려운 문제인데요, 대한민국 형법 22조에서는 자신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를 긴급피난이라고 해서, 해당 위법행위에 대한 위법성을 조각하는 조항이 있거든요, 사실 이번 경우에도 그 조항을 들어-“

 

시민의 변호사로 유명한 강지원 인권 변호사가 교수의 말을 끊고 들어온다.

 

“아니 교수님, 아무리 상황이 급박했다고 한들, 그 상황에 이제 갓 스무살이 넘은 어린 여자를 겁박해서 강제로 매춘을 하게 한 행위를 지금 긴급피난이라고 보시겠다는 거에요?”

분노에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는 강지원 변호사.

 

“아니 이게 사실 겁박 혹은 매춘이라고 부르기가 힘이 든 이유가, 고 천유라씨가 본인의 의지로 직접 문을 열고 나왔거든요, 그리고 사실 그녀가 그 이후 김용찬씨 집안으로 들어가는 데까지 어떻게 강제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식은 땀을 닦으며 말하는 이병욱 교수의 말을 다시금 자르는 강지원 변호사.

 

“그녀가 집 밖으로 나오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그녀의 거실 창문으로 소화기를 집어 던졌어요, 지금 당장 유투브에만 검색해 봐도 당시 현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심각한 수준의 욕설과 협박을 퍼부었는지 이렇게 명백한데! 지금 그 사람들이 아무런 죄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죄가 없다기 보다는, 그 행위에 대한 죄값을 물을 수 없다 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거지요, 하다 못해 지금 구속된 김용찬씨마저 이걸 무슨 죄로 무슨 법적 근거에 의거해서 처벌해야 하는지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 그걸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까지-“

 

“지켜본 게 아니라! 끌고 간 거라고요! 물리적으로 사슬만 안 채웠다 뿐이지, 꽁꽁 묶어서 떡하고 사자 우리에 던져준 거나 다름이 없는-”

 

한창 달아오르는 아니 어쩌면 이미 과열된 토론장의 열기.

그 열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한 중간에.

 

아나운서의 귀에 꽂힌 수신기에 한 통의 소식이 닿는다.

소식을 들은 백서윤 아나운서의 얼굴이 흙빛으로 굳어간다.

 

“아니, 지금 다들 너무 쉽게 죄책감을 잊어버리려 하고 있어요! 우리는 손에 피만 안 묻혔다 뿐이지 다들 크게 또 작게 고 천유라씨의 죽음에 책임이-“

 

“말씀하시는데 죄송합니다. 강지원 변호사님”

 

떨리는 목소리로 백서윤 아나운서가 끼어든다.

 

한창 열변을 토하던 강지원 변호사는 시뻘건 얼굴로 백서윤 아나운서의 참견에 항의하려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얼굴은 평소에 얼음미녀라고 불리는 그것이 아닌,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울기 일보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지금 경기도 광주에서..”

 

말문을 잘 잇지 못하는 백서윤 아나운서.

그녀의 눈은 결국 차오르는 눈물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밖으로 흘려버린다.

 

“..대 마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 세계에서 비정상적인 지진파가 감지가 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터져버린 눈물을 감당하지 못해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려버린 백서윤 아나운서.

서로를 잡아 먹을 듯이 싸우던 강지원 변호사와 이병욱 교수는 그 자리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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