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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VR

by 담쟁이저택 2023. 7. 3.

덜덜덜..


좁고 어두침침한 공간에 숨은 채, 문틈 사이로 밖을 살피는 문후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 숨어 있는 곳은 그가 평소에 그렇게나 열렬히 좋아하던 유명 게임방송 여 BJ 단비의 집 장롱 안.


그리고 그가 지금 이 안에 숨어있는 이유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아무리 봐도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무섭게 생긴 2인조가 지금 자신의 옆에 놓여있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따, 우리 약쟁이씨는 또 어데 쳐박혀서 뻗어있노, 오늘 수금날인거 까먹은거 아이가? 참말로 어디 가고 없는가, 행님, 어쩔까요?”


“어쩌긴 뭐 어째, 큰형님 말씀 하신 대로 해야지. 이 년도 처음에나 좀 돈이 되나 싶었더니, 이제는 약을 너무 많이 쳐 먹어놔서 오히려 적자야. 오늘 수금 안되면 섬으로 돌린다”


투덜 투덜대며 사투리를 쓰는 남자의 입에 유난히 큰 금색 의치가 보였다.
사내는 무어라 무어라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사실 문후는 그런 대화에 집중을 할 여력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밖의 두명이 찾고 있는 인물은..
지금 시체가 되어 자신과 같이 장롱안에 구겨져 들어가 있었으니까.


도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꼬였을까.
문후는 그저 어제 한밤중 인스턴트 컵떡볶이를 먹고 싶어했던 자신을 원망할 뿐이었다.




##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미래.
VR기술의 발달은 기어코 가상현실세계를 구현해내는데 성공했다.


더 이상은 증강 현실이 아닌 대체현실이라고 불릴만한 이 신 세계는 전 세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의료, 관광, 교육. 오락.
큰 영향을 미친 분야를 찾기보다 영향을 별로 미치지 않은 분야를 찾는 것이 더 용이할 이 신기술은 당연히 게임산업에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리고 그 게임과 접목된 이 VR 신기술의 수혜자중 하나였던 게임 BJ 단비.
그녀는 주로 중세를 배경으로 한 콘솔게임을 스트리밍하는 BJ 였다.


그녀가 처음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예쁘장한 외모의 탓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방송만이 가진 생생한 현장감과 몰입도의 탓이 컸다.


제 6세대 VR은 단순히 오감을 재현해 내는 것 뿐만이 아닌, 기억의 제어가 가능했다. 다른 말로VR에 접속한 유저의 현실의 기억을 가상현실의 세계로부터 분리, 편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다시 말하면 게임 시스템에 접속을 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유저는 더 이상 자신이 게임을 하는 것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정말로 그 게임 속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란 온 것처럼 인식을 하게 인위적으로 편집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


물론 시스템에서 접속이 끊기는 순간 기억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사이 소위 말하는 플래시 백 현상이 부작용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적어도 그 가상현실세계에 접속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녀는 게임방송 BJ 단비가 아닌, 


잃어버린 절대자의 지팡이를 찾으러 가는 기사단장.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법사의 탑에서 쫓겨난 대마법사의 딸.
마왕의 위협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용사 등등으로 생생한 현장감을 방청객들에게 줄 수 있었다.


물론 위에 말한 플래시 백 등, 안전상의 이유로 게임 제작사에서 게임이 시작하는 시점 이전의 기억을 제공해주는 경우는 없었다. 따라서 그녀는 스스로 미리 소설을 쓰듯 주인공 캐릭터의 배경을 만들어내야 했기에 그녀는 그 복잡한 사전준비와, 부작용을 감내하는 노력파, 열혈파 BJ로 그 이름을 알렸다.


또한 그녀 스스로가 그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기에, 그 방송을 보는 이들은 마치 한편의 잘 짜여진 연극을 보듯, 그렇게 그녀의 방송을 즐길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배경 설정조차 없는 단순한 B급 용사 물 게임을 불치병에 걸린 한 미혼모가 자신의 젖먹이 아이를 마왕의 저주에서부터 지키기 위해 피눈물을 삼키며, 남은 생명을 깎아 간신히 세상을 구해내는 한편의 드라마로 바꾸어낸 그녀의 방송은 지금도 전설로 회자될 정도.


그런데 그런 그녀가 어째서 지금 차갑게 식어가는 시체가 되어 장롱 안에 갇히게 되었을까.


그 원인은 당연하게도 그 그녀의 시체의 옆에 앉아 있는 남성에게 있었다.


32살 백수 김문후.
방금 막 자신이 살해한 BJ 단비의 시체와 함께 죽은듯이 숨을 죽이고 있는 그는 방구석 폐인이었다.


늘 겉돌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하듯 대학 입시에 참패. 집안에서 쫓겨나듯 가게 된 군대에서는 반년 뒤 복무 부적격자 판정을 받고 전역. 그 이후로는 집안에 처박혀 컴퓨터 세상 밖으로 거의 나와 본적도 없는 그런 류의 인간.


그런 그에게도 한가지 소망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아이돌인 BJ 단비를 만나보는 것이었다.
우연치 않게 한번 접하게 된 이후 단 한번도 거르지 않은 그녀의 방송.


돈이 없어 단 한번도 달풍선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워낙 열혈 방청자였던 탓에, 단비는 언젠가의 방송에서 자신의 아이디를 언급해 준 적도 있었다.


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던가.


그렇게, 하늘이 그런 그를 긍휼이 여기셨음일까, 그는 어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그것도 무려, 집 앞 편의점에서.


평소 같았으면 집 밖 공기를 맡아볼 일도 거의 없을 그가 편의점을 방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말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밤중 생각난 컵떡볶이에 그는 그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에 대한 상이었을까, 그는 그곳에서 말보로 레드를 사는 그의 아이돌. BJ 단비를 볼 수 있었다.


후드티를 깊게 눌러쓰고, 한밤 중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너무나 수상한, 그렇지만 반대로 노출은 거의 없는 그런 복장의 인물. 그 최소한의 노출만으로도 문후는 단박에 그녀가 단비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 후로 정말로 무언가에 홀리듯이, 그는 그녀가 모르게 그녀의 뒤를 밟았다.
그렇게 골목길을 세 번 돌았을까, 원룸촌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몰래 뒤따라간 문후는 그녀의 집을 확인한 것도 모자라, 기어코 그녀의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보게 되었다.


찾았다.
찾았다.
나의 그녀.
나의 이상형.
나의 천사.
나의 단비.


그녀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만으로도 문후는 갑자기 주위의 공기가 맑아 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문에 의하면 억대 월수입을 얻는다는 인기 BJ가 왜 원룸 촌에서 생활을 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문후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그에게서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단비의 집을 확인한 흥분에 잠을 이루지 못해 날 밤을 샌 문후의 심장박동이 제 리듬을 찾기도 전에, 그는 큰 시험에 들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팔로잉하고 있던 BJ단비의 페이스북.


단비는 전날의 방송을 마치고, 잠시 일본으로 휴양을 갈 생각이었는지 인천공항에서 체크인 기록을 남겼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러려니, 하고 말 정보였겠지만 문후에게는 그 체크인 기록이 전혀 다른 의미로 보였다.


인천공항에서의 체크인.
바꿔 말하면, 지금 단비는 그녀의 집에 없다는 이야기.


자신의 여신의 보금자리에 대한 정보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 문후는 이제 그 이상을 바라게 되었다.


그녀의 공간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녀가 쓰는 방, 침대, 화장실. 그녀의 삶의 편린을 겪어보고 싶었다.


무언가 딱히 훔쳐간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보고 싶었다.


늘상 보는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그녀의 방 한 켠이 아닌 그 앵글 밖의 공간.


문후 자신과 같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그녀만의 공간.
그 공간을 보고 싶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멈추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를 옆에 두고 옷장 안에서 문틈으로 밖을 바라보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러나 문후는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전날 확인한 그녀의 집 앞까지 단숨에 달려간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전날 확인한 그녀의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그의 천사, 단비의 정원에 입장했다.




##




문이 열리고 문후가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당혹감 이었다.
마치 시궁창 안에서 쓰레기가 썩는 악취
일반적으로 절대적으로 역한 그 냄새는, 문후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그래, 마치 그 자신의 방을 보듯, 여기 저기 널린 정리되지 않은 쓰레기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현관 입구는 그에게 묘한 기시감을 주었다.


어찌된 일일까, 그가 어제 사람을 잘못 본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어제 밤 그가 본 것은 분명히 단비였다.


그렇게 의구심을 품고 쓰레기 더미를 넘어 나아간 그의 눈에 익숙한 공간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실제로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하지만 모니터 너머로는 수십 수백번을 돌려 보았던 단비의 방.


기가 막히게 카메라 앵글을 피해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들 사이를 헤치고, 그 익숙한 공간에 발을 들인 문후는 이윽고 자신의 시야 구석에서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을 보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단비.


지금쯤 일본으로 휴양을 갔어야 했을 단비가 하얗게 뒤집혀진 눈으로 입에는 실거품을 문채 기괴하게 웃으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히이이익-“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에 다리에 힘이 빠진 문후가 자세를 고쳐 잡기도 전에, 단비는 문후에게 달려들었다.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목을 조르려 드는 자신의 여신에게 전심전력으로 저항하면서, 문후는 바닥을 구르는 쓰레기들 중 주사기와 주사바늘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방송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팔꿈치 안쪽, 수 많은 주사바늘에서 그는 지금 단비가 마약에 취해있음을 깨달았다.


맙소사.
말도 안돼.
그럴리 없어.
나의 여신이 이럴리가 없어.


문후는 절망했다.
또 절박했다.


산산이 부수어져 버린 그의 환상과, 또 숨 죄어 들어오는 호흡에 필사적으로 반항을 하던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바닥을 구르던 깨진 병 조각을 단비의 목에 박아 넣은 뒤였다.




##




도대체 어찌된 것일까.
인천공항에 있었을 그녀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 하다.
GPS를 조작하기라도 한 것 일까. 그렇지만 도대체 왜?


눈앞에서 목에서 울컥 울컥 피를 토해내며 차갑게 식어가는 그의 여신을 보며 문후는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설상가상, 그런 그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 누군가가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들었다.


삑- 삑- 삑-


단비의 집 비밀번호는 총 8자리.
앞으로 다섯 번이 남았다.


위급상황에 정신이 부리나케 돌아온 문후는, 급한 대로 이미 숨이 끊어진 단비를 방 구석에 있는 장롱으로 밀어 넣고 그 옷장 안에 있던 곰팡이가 슨 이불로 바닥에 흐른 핏자국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가 단비와 같이 옷장 안으로 그 몸을 숨김과 동시에 현관 문이 열렸고.
두 명의 덩치 좋은 사내가 방 안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아따, 이 약쟁이 가시나 방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더러워지네, 행님 조심하이소, 바닥에 뭐가 많습니데이”


“보면 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따, 우리 약쟁이씨는 또 어데 쳐박혀서 뻗어있노, 오늘 수금날인거 까먹은거 아이가?”


사투리를 쓰며 쓰레기 더미에서 모습을 드러낸 덩치 좋은 사내의 앞니는 금색으로 반짝였다.
의치를 금으로 두른 것일까, 아니면 무슨 다른 의미라도 있는 것일까.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그 특이한 금니의 주인은 성큼 성큼 걸어 들어와 이제 막 문후가 간신히 깔아놓은 이불 위를 구둣발로 밟고 섰다.


그 광경을 장롱 문 틈으로 보고 있던 문후는 이불 위에 선 사내의 발 밑에서부터 천천히 핏자국이 이불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눈치챘다.


아직 사내는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점점 더 번져가는 그 핏자국은 문후의 눈에는 마치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참말로 어디 가고 없는가, 행님, 어쩔까요?”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금니의 사내의 뒤로 그보다 덩치가 더 큰 사내가 선다.


“어쩌긴 뭐 어째, 큰형님 말씀 하신 대로 해야지. 이 년도 처음에나 좀 돈이 되나 싶었더니, 이제는 약을 너무 많이 쳐 먹어놔서 오히려 적자야. 오늘 수금 안되면 섬으로 돌린다”


“섬으로예? 와 통나무 장사하는 아들한테 안넘기고?”


“너 같으면 약에 쩌든 장기를 사겠냐? 너 지금 그년 몸 안에 뭐 제대로 된 물건이 남아 있기라도 할거 같아? 차라리 어디 섬에라도 던져놓으면 지나가던 선원들 몸보신이나 하겠지”


“아 맞네예, 역시 행님은 머리가 좋.. 응?”


맞장구를 치던 금니의 사내의 시선이 문후가 숨어있는 장롱에 닿았다.
사내가 하던 말을 멈추고 뚫어져라 장롱 쪽을 응시한지 수초나 지났을까, 사내는 형님이라고 불리는 사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행님, 아무래도 이 가시나 지금 어데 간 거 같은데 우리.. 잠깐.. 밖.. 담배..”
“뭐? 똑바로 말해 임마”
“아니요, 행님, 그라니까.. 해서.. 하믄..”


갑자기 작아진 사내의 목소리 크기에 문후는 사내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보자. 적당히 기다려 봐야지”


형님이라고 불린 사내는 먼저 등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그를 뒤따라 나가는 금니의 사내의 시선이 장롱쪽으로 스쳤다고 생각이 되는 건 문후의 착각이었을까.


그렇게 다시, 끼이익 하고 철제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필사적으로 소리를 죽이며 기척을 지우고 있었던 문후는 그제서야 터져나온, 온 몸에서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는 떨림에 장롱 밖으로 굴러 떨어지듯 튀어나왔다.


“하-악, 하악”


참고 있었던 숨을 몰아 쉬며, 문후는 몸의 떨림을 억누르려 노력했다.


지금 자신은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아마도, 이 집안 여기 저기에 자신의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건 워낙에 엉망진창인 집안상태 덕에 머리카락 같은 건 신경을 덜 써도 될 것 같지만, 적어도 흉기인 깨진 병이나 집에 들어올 때 누른 현관문 비밀번호에 남은 지문 정도는 지워야만 했다.


잘은 모르지만 앞서 나간 두명의 사내는 담배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정말로 그 담배 한대를 태울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사람의 내장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이와는 두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다.
그것도 심지어는, 그들에게 빚을 진 여인을 살해하고 난 직후에는 더더욱.


입고 있던 옷으로 여전히 단비의 목에 박혀있던 유리조각에 남아있을 자신의 흔적을 최선을 다해 닦아낸 문후는, 현관문 밖의 상태를 살피려 쓰레기를 넘어 현관 쪽으로 향하려던 중, 그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토록 문후가 피하고 싶어했던 그 두 명의 사내가, 너무나도 당연한 듯, 현관문 안쪽에 기대어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님, 제 말이 맞지요? 문 닫기는 소리만 들리믄, 지 발로 기어나올기라고..”


금니의 사내는 가소롭다는 듯 문후를 보며 비웃었다.


“그러게, 네 말이 맞네. 근데 뭐하냐. 안 잡고”


형님이라 불린 큰 사내의 말에 금니의 사내는 마치 굶주린 맹수가 사냥감에 달려들 듯, 매섭게 튀어나와 문후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그 사이, 형님이라 불린 사내는 금니의 사내에게 목이 졸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상황이 된 문후의 앞을 여유작작한 표정으로 지나가 지금까지 문후가 숨어있던 장롱 안을 살폈다.


“하- 이 미친새끼. 뭐하는 새낀진 몰라도 우리 물건 하나 제대로 조져놨네”


단비의 시체를 확인한 뒤, 혀를 차며 문후의 앞으로 돌아온 큰 사내는 천천히 문후의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방배야, 이 새끼 아무래도 일단 좀 업어가야 되겠다. 혹시 모르니까 안에 장기들 안 다치게 조심하고. 상품가치 떨어질라, 겁도 없는 새끼가 너 대체 뭐하는 새끼야?”


큰 사내의 질문에 문후는 답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막혀오는 숨통에 그저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기만 할 뿐, 그 이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질문을 하기는 했지만, 애초에 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문후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큰 사내가 말했다.


“마, 그러다가 뒤져버리기라도 하면 알맹이 몇 개 못 판다. 알아서 얌전하게 해서 데리고 와. 어디 크게 안 다치게, 아 씨발 골치 아프네 큰형님한테 뭐라고 하냐”


머리를 긁적거리며 현관문을 나서는 큰 사내의 모습이 닫히는 문 사이로 사라지자 금니의 사내는 거칠게 문후의 몸을 거실쪽으로 집어 던졌다.


“아 비실비실한 아가 생각보다 무겁네, 어이쿠, 어딜 토낄라고. 얌전히 따라온나”


사내의 우악스런 손길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려했던 문후는 너무나도 쉽게 다시 그 목덜미를 휘어 잡혔다.


“그냥 좀 줘 패가 데꼬갈라켔더니 안되겠다. 니 일로 온나”


멱살이 잡힌 채, 질질 끌리듯이 거실의 한가운데, 낯이 익은 단비의 방송장소까지 끌려온 문후의 얼굴에 평소에 그가 화면 너머로만 보았던 단비의 VR웨어가 씌워졌다.


“안 그래도 지난번에 이런게 설마 쓸 일이 있겠냐고 씨부리 쌌는데, 진짜 쓰게 될 줄은 몰랐네”


필사적으로 아둥바둥 대는 문후의 노력이 가소롭다는 듯, 사내는 VR웨어의 전원을 켜고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VR웨어의 소켓에 꽂아넣으며 말했다.


“얌전히 있그라, 씨잘대기 없이 반항하지말고. 니 몸 상한다. 니 몸 상하면 값 떨어진데이”


비아냥 거리는 사내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문후의 시야는 암전이 되듯, 퍽! 하고 꺼졌다.




##




“우.. 우와악!”


고등학생 문후는 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문후가 눈을 뜬 곳은 동네 VR방 개인실.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은 대한민국 고3.
평소에 공포게임을 즐겨했던 그는 평소에 자주 찾던 VR방의 알바 형이 직접 제작한 가상현실체험에서 막 현실로 돌아온 참이었다.


“하악.. 하악..”


문후는 방금 자신이 겪었던 그 소름 끼치는 상황이 단순히 가상현실이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이 소름이 끼치는 완성도의 시나리오를 쓴 알바 형에 대한 경애심이 피어올랐다.


손목에 찬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여섯 시 반. 지금 집에 돌아가면 얼추 보충수업이 끝난 뒤 돌아온 것으로 보일 것이다.
흐르는 식은 땀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를 향한 문후에게 카운터 뒤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던 알바가 물었다.


“재미있었나?”


싱글싱글 짓궂게 웃으며 말하는 알바에게 문후가 아직도 땀에 젖은 교복을 펄럭이며 말했다.


“형 완전 대박, 나 땀에 절은 거 봐요. 저거 잘 만들었네요. 오늘은 얼마에요?”


“사장도 없고, 마 3천원만 내라. 근데 니 플래시백은 없나?”


약간은 걱정이 된다는 투로 문후의 안색을 살피는 알바에게 문후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답했다.


“신기하게 잘 모르겠네요. 아니면 너무 무서워서 플래시백도 못 느꼈나?”


“어린게 좋기는 좋네, 건강하구로”


알바는 씩씩한 문후의 반응에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적당히 해라. 니 몸상하면 큰일난데이”


문후에게 건네받은 돈을 세며 웃어보이는 알바의 입에서 금색 의치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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