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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2

재수없는날 염라대왕이 말했다. “좋다, 그럼 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 되돌려 보내주마. 물론 그 시점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은 지울 것이기에 그냥 돌려보내 줘봐야 너는 똑같은 인생을 살테지, 그러니 그 후회되는 짓을 하지 않도록 무언가 장치를 해놓고 싶다면 그것 정도는 도와주도록 하마” “저..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염라대왕님. 저, 정말로 이번에는 열심히 살겠습니다. 정말로 착하게 남들 도우면서-“ 염라대왕은 소란을 피며 인생의 계획을 늘어놓는 망자의 말을 한쪽 귀로 흘렸다. 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지루했을 뿐. 그랬다. 염라대왕은 지루했다. 매일같이, 아니 정확히는 시간 축 자체가 의미가 없는 이 세계에서 너무나도 참을 수 없이 지루했기에 잠깐 장난을 쳐 보았을 뿐,.. 2023. 6. 27.
파충류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교도소를 향하는 버스 안에서, 포승줄에 묶인 채로, 나는 생각한다. 놈을 처음 본건 3년, 아니 약 2년 반정도 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식 때, 내 앞에 섰었던 그 놈. 교복 카라 위로 보이는 놈의 목에 일어난 버짐.. 아니 발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이 기묘한 피부병은, 마치 도마뱀 같은, 파충류의 비늘을 닮아 있었다. … 나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일진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이 운영하시는 남들이 이름을 들으면 그럭저럭 알아볼만한, 성공한 사업체를 가지고 계셨고, 그로 인해 내 생활은 늘 풍요로웠다. 태어나서부터 언제나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컸던 덩치 덕에, 그리고 능력 있는 부모님에게서 받은 풍족한 용돈 덕분에, 나는 늘, 학교에서 힘있는 무리들의 중.. 2023.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