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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23

내 아이의 아버지 "우와, 딱지야, 아빠 나온다, 자아-, 아빠 나온다. 우와- 알아 보겠어? 아빠야 아빠" 아직은 부풀어 오르지도 않은 배를 쓰다듬는 선영. 이제야 막 임신 10주차에 들어간 그녀는 자신의 취미 겸 태교 겸 거실 한구석을 채운 80인치 티비에 석훈이 나오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있었다. 이름 박석훈. 아역 출신 연예인. 어렸을 때부터 한결같은 연기력과, 정변의 예시라고 할만큼, 나날이 증가해가는 남성적인 매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놓지 않는 배우였다. 어찌 말하자면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단 한번도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배우였던 만큼, 그의 사생활은 더 더욱이 비밀로 부쳐지고 있었는데.. 그랬던 그가 어떤 의미에서는 엄청난 정보를 자의로 대중에 흘린 것이 어느새 1년이 지난 듯 했다. 그것은 바로 불.. 2023. 6. 18.
무차별 살인 다음 뉴스입니다, 지난달 국내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독극물살인 용의자가 검거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용의자는, 도깨비 음료 제조 업체의 연구원 출신으로, 본인이 인터넷에 처음으로 올린 사건 예고 두달여전 정리해고를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음료 제조사와, 유통업체들의 적극적인 리콜에도 불구 전국 각지에서 세 명의 사망자를 낸 이 불행한 사건은..」 ## 지금으로부터 약 세달 전, 인터넷 모 사이트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무언가 술에 취한 사람이 작성한 듯한 횡설수설한 글. 세상과, 도깨비 음료 제조업체를 향한 원망과 저주를 제외하고 나면 중요한 내용은 단 한 줄. '대한민국 어딘가에 팔리고 있는 도깨비 음료들에 독을 탔다. 목숨이 소중하다면 사먹지 말기를 바란다' 워낙에 게시판 글 갱신률.. 2023. 6. 18.
여기는 알래스카, 신혼여행중에 조난을 당했다 지익- 지익- 고체연료를 태워 굽고 있는 곰 내장에서 불쾌한 소리가 난다. ..지금이 도무지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평생을 산악인으로 살아왔지만, 이런 위기를 처음 겪어본 것도 아니지만, 이번에 드는 공포감은 예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결혼을 한 몸이니까.. ..그리고 같은 산악인 출신인 아내가, 지금 내 옆에 없으니까. 아내와는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하는 프로젝트 팀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씩씩하고 든든한 모습에서 느껴진 의외의 매력에, 등정을 시작한지 며칠 되지도 않아 홀딱 반해버렸었지.. 장비와 물자의 부족으로 결국 도전은 실패했지만, 귀국길에 미친 척 질러버린 고백에 배시시 웃었던 아내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빌어먹을. 이 미친 신혼.. 2023. 6. 18.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쓰다 서울시 노원구 어딘가의 곱창집. 말쑥하게 차려 입은 옷차림의 두 중년 남성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직은 조금 이른 저녁이지만, 가게 안은 어느새 제법 사람이 차 있다. "이야- 어떻게 여기는 변한 게 하나도 없냐" "그러게 5년 전이랑 전혀 차이가 없네" 향수가 묻어나는 감탄사를 내뱉은 두 사람. 스스로 알아서 자리를 잡아 앉고, 벽에 걸린 목제 메뉴판에 눈길을 가져간다. "가격은.. 역시나 제법 올랐네" 가격표를 보며 피식- 하고 웃어넘기는 이 남자의 이름은 형식. 20년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세계 제일의 저널리스트를 꿈꾸던 남자였지만 지금은 국내에 제법 알아줄만한 신문사에서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뭐, 안 그랬으면 이런 규모 가게가 어디 남아났겠어?" 형식의 말을 받아주며 입고 온 코트를.. 2023. 6. 18.
선생님, 도대체 왜.. 눈을 뜨셨네요. 많이 불편하시죠? 어제 과음 하셨으니 그러실 만도 하시겠죠.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리고 너무 바둥거리지 마세요. 선생님 손발 묶어놓은 거 케이블 타이라고, 선 정리 할 때 쓰는 건데 아둥바둥거린다고 끊어질 물건이 아니니까요. .. 제가 왜 이러는지 궁금하세요? 글쎄요. 정말 어디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저는요. 저는 정말로 선생님이 좋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없어서 그랬나, 정말로 선생님은 그냥 이웃에 사는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정말로 아빠 같았어요. 제가 졸업식에 다들 아빠 오는데 나만 아빠 안 온다고 안 간다고 떼쓰니까 대신 와주시기도 하고. 엄마 몰래 뒤에서 용돈도 조금씩 주시고. 다 자라서도 몸 걱정 된다고 엄마도 저도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공짜로 해주시.. 2023.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