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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식탁예절

by 담쟁이저택 2023. 7. 28.



종편에서 하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아침 방송.


현란한 그렇지만 요란하지는 않은 관악기들의 연주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주부들 사이에서는 육아에 관련해서 유용한 정보로 화제가 되고 있는 방송.


생방송 ‘우리 아이 바르게 키우기’ 의 막이 올랐다.


오프닝 음악이 사그라 들어갈 때 즈음 이어져 터져 나오는 방청객들의 호응.


그에 맞춰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가 사그라들어 갈 때 즈음, 무대에 등장한 중년의 여성 패널이 공손히 인사하며 손에 쥔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댄다.


"반갑습니다. 어머님들. 일주일 만에 뵙는데 어째 지난 주보다 더 젊어지신것 같아요?"


패널의 농담에 까르르- 하는 웃는 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방청객들의 반응을 확인한 여성 패널, 올해로 마흔 네 살을 맞은 박해영 아나운서는 잠시 분위기를 환기 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오늘의 주제가 뭘까요? 바로 밥상머리 예절. 조금 교양있는 말로 식탁예절인데요. 우리 어머님들, 특히 어린 자녀분 두신 초보 어머님들, 아이들 식탁예절 교육하기 참 힘드시죠?”


“네에-“


방청객석에서 긍정의 회답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박해영 아나운서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요즘 세상은 정말로 우리 여성분들이 아이를 키우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요. 어린 아이 유모차에 태워서 백화점 엘리베이터라도 탈라치면 눈치 받죠. 아이 데리고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려고 치면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한테 아이 시끄럽다고 험한 소리 듣죠. 조금만 무슨 실수를 해도 요즘 말로 맘충이라는 욕설까지 듣는 세상. 그런 와중에 밥이라도 한끼 제대로 먹으려고 하면, 우리 아이들 정말로 너무나 말을 안들어요. 우리 어머님들 정말로 밥 한술 제대로 못뜨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다들 이런 경험 한번 쯤은 있으시죠?"


패널은 잠시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 방청객들의 분위기를 살핀다.
무어라 무어라 꿍얼대는 소리는 들려오지만 딱히 큰소리로 공감의 의견이나 비공감의 의견을 내세워보려는 이는 없는 듯한 조금은 어색한 상황. 


기대했던 진행방향과는 다르지만, 노련한 해영은 자연스레 다음 주제로 대화를 돌려간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안그래도 바쁜 우리 어머님들, 그리고 그 훈육방법. 거기에 정답이라는게 과연 있기는 할까요.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정답에 가까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겠지요. 그래서 모셨습니다. 아이행동발달과 아동심리학의 전문가, 류수화 교수님이십니다”


해영이 박수를 치며 호응을 유도하자 방청객석에서도 일제히 큰 박수소리가 따라 나온다.
그리고 그 박수소리에 맞추어, 무대 한가운데 떡하고 자리한 거대 스크린에 한 여성의 모습이 비친다.


그리고 그 아래 자막으로 그녀의 약력이 떠오른다.


한국대학교 아동심리학과 교수. 
베스트 셀러 작가 류수화.


우아한 목소리로 화면 건너에서 그녀가 인사한다.


“주부 여러분 안녕하세요. 방금 소개받은 한국대학교 아동심리학과 교수 류수화입니다”


화면에 자리잡은, 자신을 류수화라 소개한 여성은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한다.


가슴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것을 봐서 무언가 요리중이었던 듯한 그녀의 복장.
간신히 상체만 화면에 잡은 카메라의 각도 탓에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복장에서 미루어 보건데, 그리고 열심히 움직이는 그녀의 상완부와 무언가 사각 사각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건데, 아마 무슨 오이라도 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멀티태스킹에 능한지, 수화는 손을 멈추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박해영 아나운서님께서 너무 거창하게 소개해 주셨지만 사실 저도 이제 막 일곱 살이랑 네 살 된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에요. 사실 육아에 대해서라면 저보다 지금 방송을 보고 계실 주부 분들이 더 선배님들이실 거에요”


류수화 교수는 우아하게 웃으며 한 손을 들어 입을 가린다.
그런 그녀의 손에 쥐여져 있는 것은 부엌칼. 그것으로 사각거리는 소리의 정체가 무언가를 써는 소리였다는 것은 확실해 졌다.


“어머나, 류수화 교수님. ‘우리 아이 때리지 않고 교육시키는 법’이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로 까지 만드신 분이 그렇게까지 겸손해하시면 여기 방송보고 계시는 분들 주눅들어요”


“어머나, 그러려나요”


부드러운 해영의 지적에 수화는 다시금 손을 들어 입을 가리고 우아하게 웃는다.
그녀의 웃음이 끝나기를 잠시 기다려준 해영은 손에 들은 진행 메모를 한 장 뒤로 넘기고 말을 이어 나간다.


“자 류수화 교수님. 오늘의 저희의 주제는 식탁예절인데요. 아- 이거 참 어려운 주제네요. 요새 인터넷에도 많이 올라오지요? ‘식당에 기분 좋게 들어갔다가 난장판 피우는 아이들 때문에 그리고 그것 제대로 말리지 못하는 그 부모들 때문에 기분 망치고 돌아왔다’ 뭐 이런 푸념 글들. 또 ‘우리 아이가 모르는 사람한테 식당에서 욕먹었어요. 제가 잘못한 건가요’ 같은 한탄 글들. 이게 참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상황들인 경우가 많은데. 교수님네 자녀분들은 어떤가요? 외식하러 나갔을 때 식당에서, 혹은 집안 식탁에서 얌전한 편인가요?”


해영의 질문에 수화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손놀림을 재개하며 대답을 한다.


사각 사각-


“음- 얌전하다고 해야 할까요? 식탁 예절은 제가 좀 엄하게 교육시켜놓은 터라 저희 아이들은 집안에서도 밖에 나가서도 식탁근처에서는 말썽을 잘 부리지 않아요”


수화의 대답에 방청객석에서 오오- 역시- 같은 반응들이 터져 나온다.
기대한 반응이 나오자 해영은 그 분위기를 몰아가기로 결정한다.


“역시 교수님다우세요. 베스트 셀러는 괜히 나오는 게 아니네요. 혹시 저희들한테 그 비결 좀 나누어 주실 수 있을까요? 엄하게 교육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걸 조금 더 자세히 여쭤봐도 될까요?”


“네? 아 사실 별거는 없어요. 서양에서는 타임아웃 존이라고들 하지요? 한국에서는 생각하는 의자라고들 하기도 하구요. 아이가 잘못했을 때 벌을 세우는 장소. 거기에서 자기 잘못 자기가 깨우칠 때까지 벌을 세우고 그리고 아이가 반성했을 때 다시 따뜻하게 안아주는 방법. 저는 그걸 조금 다른 방법으로 했어요”


“네? 조금 더 자세하게 여쭤봐도 될까요? 이를테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는지?”


해영의 질문에 수화가 목을 가다듬으며 대답을 한다.


사각 사각-


“저는 늘 아이들에게 말해요.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있고.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지하면 그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다. 그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의 특권이고 그걸 하지 못하면 우리는 단순한 물건과 전혀 차이가 없다.”


사각 사각-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 때, 그 행동을 교정하거나 반성하지 않으면 저는 그날 그날 다른 물건 하나를 정해서 그 물건이 해야 하는 일을 대신 하게끔 만들곤 해요. 이를테면 물 조리개를 대신해서 손으로 물을 떠다가 화분에 물을 주게 만든다던가, 사진첩을 대신해서 사진을 들고 있게 만든다던가”


“..네?”


무언가 의외의, 그리고 많이 억지스러운 수화의 대답에 해영은 당황했다.
지금 수화의 말이 설득력이 있게 들리는 사람이 있을까?


당황해 하는 해영을 두고 수화는 말을 계속 해 나간다.


사각 사각-


“여기에서 중요한 건, 단순히 벌을 세우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 물건의 역할을 진지하게 대신하게 하는데 있어요. 아이가 화장실 수건이라면 정말로 화장실에 세워놓고 손을 씻은 다음에 아이한테 문질러서 닦고, 식탁 의자라면 정말로 그 위에 앉아서 밥을 먹어버리는 거죠”


“네엣?”


당황한 해영의 목소리와 더불어 방청객석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지만 수화는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사람이라면 생각을 하고, 사람답게 생각해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물건과 다름이 없다는 걸 확실하게-“


사각 사각-
서걱-


“아야!”


화면을 찢고 날아오는 어린 아이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화면 아래에서 튀어 오른 붉은 액체가 수화의 앞치마를 더럽힌다.
그리고 그 직후, 무표정하게 설명을 계속해 나갔던 수화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너! 엄마가 도마는 움직이는 거 아니라고 했지! 가만 안 있어?”


쾅! 아니 퍽! 하고 내리 찍는 소리.
그리고 다시금 튀어 오르는 붉은 액체.


귀를 째는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멈추지 않는 수화의 손.


화면 너머에 비치는 피범벅이 된 앞치마를 둘러쓴 미친 여인을 보며, 해영은 오늘이 이 프로의 마지막 방송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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