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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집

서비스를 종료합니다

by 담쟁이저택 2023. 6. 19.

 

"후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른 새벽. 군청색 우비 안에서 내뿜은 김반장의 담배 연기가 조용히 공기 중에 흐트러져간다.

 

"아주.. 난리 부르스를 쳐 놨구만.."

 

30년 경력의 베테랑 형사인 김현식 반장.

산전 수전 다 겪어본 그였지만 이번 현장은 그런 그로써도 결코 쉽지 않은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곳은 관악산 등산로 근처, 가파르다면 가파른 언덕길 아래, 그 물건은 널부러져 있었다.

 

 

"우..우웩!"

 

 

후두두둑.

 

"아, 나 저 비위 약한 새끼, 강형사, 저 신입 치워"

 

"아, 죄송합니다. 야 이 새끼야! 너 그래가지고 형사 해먹겠어?"

 

그의 고갯짓 한번에 옆에 있던 다른 중년의 형사가 바닥에 토사물을 흩뿌리고 있던 젊은 형사의 뒷목을 잡고 끌고 나간다.

조용히 신입이 사라지는 쪽으로 눈을 흘겼던 김반장은 다시금 현장으로 눈을 돌렸다.

 

"도대체.. 어떤 미친새끼냐"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한 중년 여성의 시체.

조금 찢어지고 만 등산복이나 다리 하나 부러져 나간 선 캡과는 상반되게, 그녀의 얼굴은 정말로 가족이 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그리고 터져나간 머리에서 흩뿌려진 뇌는 이미 반쯤은 진흙에 녹아 그 흔적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게 무슨 소설 쓰자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또 하나 끔찍했던 건, 그녀의 양손, 모든 손가락의 지문이 도려내져 있었다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시체에서는 신원을 추측할만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어느새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김반장의 이에, 담배필터는 껌 딱지마냥 우그러져 갔다.

 

 

##

 

 

"후루룩"

"우적 우적"

 

 

국밥에 말아 넣은 깍두기를 씹던 김반장의 눈이 눈앞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신입형사의 얼굴에 멈춘다.

 

"야, 신입"

 

"네! 반장님!"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드는 젊은 형사.

 

"많이 놀랐냐?"

 

"죄송합니다"

 

젊은 형사는 고개를 숙인다.

 

"네가 죽였냐? 뭐가 죄송해?"

 

"죄송합니.. 아니 그래도 죄송합니다."

 

바짝 군기가 들어간, 그래도 조금 어리숙한 대답에, 김반장의 입 꼬리가 조금은 느슨해 진다.

 

"야, 신입"

 

"네, 반장님"

 

"너 내가 지금까지 봤던 현장 중에 제일 미친 현장이 어떤 곳인지 아냐?"

 

"잘.. 모르겠습니다."

 

아까 봤던 장면이 생각이 나는 듯 다시 불편한 표정을 짓는 신입을 앞에 두고 김반장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방화살인 사건이었어. 범인은 22살먹은 중학교 중퇴한 아들놈, 피해자는 몸 불편한 그놈 부모랑 또 같이 살던 친할머니"

 

후우-

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 너머로 식당 아주머니가 눈살을 찌푸리는게 보이지만, 김반장은 생각한다. 뭐 어떠하랴, 지금 이것도 공무수행 중인데.

 

"어느 날 밤에, 정말로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자기 이 미친놈이 동네 주유소에서 기름을 사다가 집에 뿌리고는 불을 질렀어. 한밤중이었으니, 다들 자고 있었고.. 옆집에까지 불이 번지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었지"

 

다시 한번 후우-

 

"근데 그 미친놈이 그랬던 이유가 뭐였는지 아냐?"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이 신입의 별명은 앵무새라고 붙여줘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김반장은 말을 이어간다.

 

"하던 게임이 서비스 종료를 했거든"

 

"네?"

 

예상치 못한 답에 신입 형사의 눈동자가 커진다.

 

"이놈이, 중학교 때부터 단체생활에 적응을 못했던 모양이야. 왕따 뭐 그런 것도 당하고, 그리고는 학교 때려 치고, 집에 처박혀서 게임만 했다. 뭐 이런 이야기지"

 

김형사는 식탁 밑으로 담뱃재를 턴다.

 

"근데 그 놈이 그 게임 하나를 중학교 자퇴하기 전부터, 집에 불지르던 날까지 쭈욱 했던 모양이야. 그럼 그게 몇년이야? 한 5-6년 되려나?"

 

"네에.. 근데 그게 왜.."

 

"게임 안에서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알아주는 유명한 놈이었던 거지, 그 미친놈이"

 

"..."

 

"근데 그렇게나 열심히 하던 게임이 서비스 종료를 한다, 라는 공지가 뜨고 나서. 자기를 돌아보자니, 자기는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아무것도 없잖아?"

 

 

또 한번 후우-

 

 

"다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게 무서웠던 거지, 거기에 불쌍한 가족들은 말려든거고"

 

 

"안타까운 이야기기는 한데, 그게 왜 가장 미친 현장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반장은 자기가 쓰던 물컵에 냅킨을 넣어 재떨이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식당 아주머니의 눈매가 더욱 더 매서워 졌지만 김반장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 미친놈이 불타 죽는 와중에까지 그 게임 게시판에 글을 남겼거든"

 

 

"..."

 

 

"뭐 대충 축약해서 말하자면, 나는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 가진걸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다. 라는 요지가 반. 그리고 게임 운영진과 세상을 향한 저주가 반. 근데 그 와중에 저장버튼까지 누르고 죽었으니 독한 새끼지"

 

 

후우-

 

 

"너, 타다 남은 손가락이 다 타버린 키보드에 눌러 붙어있는 거 본적 있냐?"

 

 

"우욱-"

 

 

또 비위가 상하는지 신입 형사는 의자를 뒤로 빼며 손을 입으로 가져다 댄다.

 

"알겠다, 알겠어. 자 그만 여기까지. 자, 저기 티비에 나오는 이쁜 처자 얼굴이나 보면서 속좀 가라 앉혀라"

 

고갯짓으로 스윽 티비를 가리키자 신입형사의 눈이 따라간다. 요새는 자주 볼수 없는 브라운관 티비 안에서 예쁘게 차려 입은 여성이 패널들과 사과를 깎아먹고 있다. 아마 일종의 토크쇼 같은 게 아닐까.

 

"이쁘게 생기기는 했는데, 저 처자 누구야? 요새 티비 자주 나오는거 같은데"

 

신입 형사의 눈동자가 다시금 커진다.

 

"명동 인터뷰녀 모르십니까?"

 

"누구야? 그건"

 

김반장은 티비를 자주 보지 않는다.

 

"그 KBC에서 생방송으로 명동에서 좋아하는 연예인 설문조사 하는데, 갑자기 인터뷰 하다말고 펑펑 울면서 어렸을때 자기 버린 엄마 찾았던.."

 

 

김반장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게 굉장히 유명해져서 막 여기저기 방송국에서도 수소문해서 저 아가씨 엄마 찾아주려고 저 아가씨 데리고 동사무소도 다니고 어디도 다니고, 하다가 막 저 아가씨 키워준 고아원 원장님 나오고, 일하고 있는 편의점 사장님 나오고, 아 진짜 모르시나 보네"

 

"전혀"

 

"아무튼, 뭐, 간단하게 이야기 하자면, 인터뷰하다가 갑자기 유명해진 아가씨에요. 요새는 뭐 거의 준 연예인급이죠? 워낙 예쁘게 생기기도 했고.."

 

아까까지만 해도 세상 다 산 거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신입 형사가 봇물 터지듯 말을 쏟아내는걸 보며 김반장의 입 꼬리가 조금 더 느슨해진다.

아무래도 저 아가씨가 유명하긴 유명한가 보다.

 

열심히 티비에 나온 처자의 이력서를 읊어주는 신입 형사의 목소리를 귀 뒤로 흘리면서, 김반장은 티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확실히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이쁘게 생기기는 했다. 

 

##

 

남자 패널이 묻는다.

 

"세영씨는 요새 그렇게 아침에 등산을 하신다면서요?"

 

「아, 아니에요. 등산이랄 거 까지는 없고, 그냥 아침 일찍 동네 약수터 갔다 오는 정도에요」

 

 

"동네 약수터요? 거기가 어디죠?"

 

 

「지난번에도 말씀드린거 같은데, 그냥 말 그대로 저희 동네요, 관악산 근처」

 

"그래요? 거기 가셔서 보통 뭐 하세요? 아침부터 크아아- 하고 약숫물 한잔?"

 

 

「깔깔깔, 아니요, 그런건 아니고 제가 워낙에 아침형 인간이라 그런지 보통 제가 약수터까지 갈 때쯤이면 아무도 없더라구요, 그냥 거기서 운동 조금 하고 있으면 동네 아주머님들 올라오시고 그러는데, 그러면 같이 수다 떨면서 가지고 있는 사과나 감같은거 같이 깎아먹고.. 뭐 그래요.」

 

 

「제가 아무래도 모르는 아주머님들이랑도 잘 친하게 지내고 그래서..」

 

 

"..아무래도 어머님 생각도 나시고 그러셔서 그런가 봐요?"

 

「네.. 아무래도 조금」

 

 

세영의 표정이 우울해 진다.

 

"아이고, 제가 괜한 말을 꺼냈나 봐요, 죄송합니다. 에구.. 뭐 그래도,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니까, 혹시라도, 이 방송을 보고 계실 어머니를 향해서 한마디 해 보시죠?"

 

훌쩍..

세영이 막 흐르려던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엄마.. 나 엄마가 많이 미워요. 정말로 엄마 만나면 따지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왜 날 버렸는지, 왜 날 이렇게 힘들게 했는지. 근데요 엄마.. 엄마.. 나 엄마 보고 싶어요. 나 정말.. 많이.. 너무 많이.. 보고 싶어」

 

 

세영은 결국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만다.

 

 

"아이고, 결국 제가 이렇게 또 세영씨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이 방송을 어머님께서 보고 계시다면, 혹시나 어렸을 때 세영씨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방송국으로 연락을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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